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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 엿보기]코트밖 제2인생‘3점슛’

입력 | 2002-01-28 18:31:00

농구 코트를 떠난 뒤 TV카메라기자로 변신한 유동혁 전경배 오영춘(왼쪽부터)이 카메라를 든채 환하게 웃고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요즘 세상에는 잘 맞지 않을 때가 많다. 한 우물만 파다가는 언제 물이 마를지 모른다.

농구 선수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은퇴 후 일반직 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지도자로 나서는 게 보통이었다. 한국농구연맹 김영기 부총재는 신용보증기금 전무와 신보투자 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강병건 한국농구인동우회장은 강원은행장 출신. 당시에는 학업과 훈련을 병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엘리트 학원 스포츠가 운동에만 매달리기 시작했고 프로화가 되면서 일부 스타를 제외하고는 코트를 떠났을 때 뭘 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아졌다.

SBS 스타즈에서 뛰다 98년 은퇴한 오영춘(33)도 한때 그랬다. 식스맨으로 이따금 코트에 나섰을 뿐이었던 그 역시 불안한 장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였던 것. 그러나 TV 카메라 기자로 변신해 새로운 인생을 걸으며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농구단의 모기업인 SBS의 영상취재팀에서 생생한 화면을 담아내고 있는 것. 방송 아카데미에서 6개월동안 카메라 기술을 배운 그는 2000년 5월부터 ENG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사건 사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

“농구공만 20년 가까이 만지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처음 해보는 데 어려움이 왜 없었겠어요”. 새 삶을 살게 된 오영춘은 무엇보다도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주위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두차례 해외 출장도 동티모르와 파키스탄 등 남이 가기 꺼리는 분쟁지역이었으며 온갖 고생으로 체중이 20㎏ 가까이 빠지기도 했다.

SBS영상취재팀에는 오영춘 말고도 SBS농구단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유동혁과 전경배도 카메라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SBS 농구단 이충기 단장이 은퇴 선수의 진로를 배려해준 덕분이라는 게 이들의 얘기.

부서 내에서 바스켓 3총사로 통하는 이들은 군기가 센 단체 운동을 해봐 위계 질서를 강조하는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10㎏가까이 나가는 카메라 무게에 잘 견디고 몸싸움이 치열한 취재 경쟁에도 유리하다는 것.

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카메라 기자에 뛰어든 유동혁은 “솔직히 운동할 때는 공부와 담을 쌓았던 탓에 영어가 달려 특히 해외에 나갔을 때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3명은 후배들에게 평생 운동할 수 없으므로 틈틈이 어학과 컴퓨터 등을 배우며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처럼 운동을 그만둔 뒤 농구와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는 보편적이지 않은 가운데 동양, 삼성에서 뛰었던 김재열은 톡톡 튀는 끼를 발휘해 연예계에서 일하고 있다. 인기 영화배우 최민수의 로드 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다.

모비스 전신인 기아 출신의 한기범은 간간이 TV CF 모델로 등장하며 후배 조현일과 함께 학생 체형을 키워준다는 ‘키 높이 스포츠 교실’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와 SK빅스를 거친 주영준은 나래 텔레콤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 시즌 삼보에서 옷을 벗은 정한신은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샐러리맨과 달리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도 있다. 삼성 출신의 장기명은 서울 서초구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경영하고 있으며 SK빅스에서 뛰었던 이원혁은 서울 강남구에서 웨스턴바를 하고 있는 것. 프로 원년 삼보의 전신인 나래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장윤섭은 여중 체육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