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는 사람의 혈압 호흡수 땀 신체변화 등을 측정해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추정한다. 최근 미국의 한 병원은 거짓말 탐지기보다 사용이 간편한 열감지 카메라를 고안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이 카메라를 얼굴에 대면 눈 주위가 붉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직 실용화단계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공항과 같은 곳에서는 테러리스트를 적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주 성능 좋은 거짓말 탐지기가 있다면 우리의 ‘게이트’ 수사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든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로 ‘이용호게이트’의 고리 역할을 한 이형택(李亨澤)씨는 국회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생각할수록 가증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분수를 가리지 못하고 권력 내부를 드나들었던 인물의 거짓말 정도로 치자. 그러나 권력의 주요인사들이 요즘처럼 거짓말을 밥먹듯 한 적이 있었던가.
▼거짓말이 판치는 나라▼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수석비서관, 국정원 차장, 장군, 검사, 언론사 사장…. 우리 사회에 이보다 더 화려하고 위세 당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무슨 사정 때문인지 줄줄이 시정의 투기판 같은 ‘게이트’에 발을 들여놓았고 지금은 온갖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그 사람은 모른다”로 시작해 “알지만 만난 적이 없다” “만나기는 했지만 청탁은 없었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큰소리친다. 몇 시간 안에 탄로가 나는 거짓말을 태연히 하면서 정의로 위장하는 그들의 변장술이 놀랍다.
더 한심한 것은 검찰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밝혀내고 부정과 비리를 규명해야 할 국가의 중추기관인 검찰은 그동안 고구마줄기처럼 계속 드러나는 ‘게이트’를 덮고 숨기고 축소시키는 일만 했다. 별일이 아닌 것처럼‘잔가지’만처리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특별검사팀이 아니었다면 검찰이 의도적으로 감춘 엄청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역사 속으로 그냥 떠내려 갈 뻔했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은 이미 고전이 됐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한 권력도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면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형님 동생으로 맺어진 끈끈한 연고주의에 국가권력이 이용당하고 놀아났다.
김 대통령은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하던 25일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특히 탈세 비리와 유흥업소 탈선에 대한 단속, 건설현장 공무원의 실명제 실시를 당부했다고 한다. 그런 대통령의 당부가 왜 어색하게 들리는가. 이권청탁에 관여한 공직자를 색출하고 민원을 들어주는 등 일상의 부정 비리 부패를 척결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더 급박한 일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동원된 비리를 캐는 일이다. 김 대통령은 그야말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불길 차단에만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모면의 길만 찾으려 하다가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전면적인 개각도 하고 공직자의 윤리와 덕목도 다시 강조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땅에 떨어진 정권의 도덕성과 권위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법대로 하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법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접 환부를 도려내는 ‘뼈아픈 작업’을 해야 한다.
▼마지노선에 집착말라▼
민심은 조그만 비리의 싹만 보여도 그 뿌리와 결과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의 내부를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게이트’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청와대 측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갖가지 해명과 변명만 둘러댔다. 민심은 이미 수백리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권력은 방안에서 문턱타령만 했다. 지금도 민심은 ‘게이트’가 어디로 통하고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다 가늠하고 있다. 알 것은 다 안다. 그래서 소문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권력이 비리의 핵심을 숨기기 위해 자꾸 마지노선만 마련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민심은 항상 권력이 설정한 비리의 마지노선을 넘어가 있어도 한참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기호(李起浩) 대통령경제수석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거나 개각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면 큰 착각이다. 국가기관을 사조직처럼 움직인 ‘게이트’의 몸통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는 한 지금의 위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묘안이 없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처리하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