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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文件 공개하느니 법정출두”

입력 | 2002-01-28 18:54:00


엔론사태의 정경유착 의혹을 밝혀줄 핵심 문건의 공개 여부를 놓고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미 의회의 회계감사원(GAO)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이 문건은 체니 부통령이 지난해 운영한 에너지 태스크포스팀과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한 엔론측의 면담록. 회계장부를 비롯한 엔론의 주요 서류가 이미 파기된 상태여서 엔론의 내부고발이 없는 한 이 면담록이 정경유착 의혹을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거자료로 거론되고 있다.

▼정경유착 밝힐 에너지정책 면담내용 담겨▼

▽체니 부통령과 GAO의 공방〓체니 부통령은 27일 미 언론과의 회견에서 면담록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개할 바에는 차라리 법정에 출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GAO는 면담록을 의회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번 주말까지 제출하지 않을 경우 소송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체니 부통령은 “기록을 공개할 경우 백악관이 누구에게나 자문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면서 “자료제출 거부는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고 일축했다.

체니 부통령은 “지난 30, 40년 동안 백악관이 의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굴복해 행정부의 권한이 약화됐다”면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데이비드 워커 GAO 원장은 “우리는 헌법상 기구인 부통령이 아니라 부통령이 맡았던 국가에너지정책개발그룹의 의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임기 15년의 워커 원장은 98년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원장에 지명됐으나 공화당 집권시 처음 GAO 위원으로 임명돼 당파색이 없는 인물로 꼽힌다.

이로써 면담록을 둘러싼 대립은 1927년 의회와 워런 하딩 당시 대통령의 송사 이후 75년만의 법정 공방으로 치달을 공산이 커졌으나 최종 판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의심 받더라도 치명타는 피하기”▼

▽왜 면담록인가〓에너지 태스크포스팀과 엔론의 면담록이 주목받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28일 보도한 대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친에너지기업 정책이 엔론의 로비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밝혀줄 수 있기 때문.

일단 선후관계는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스크포스팀은 지난해 5월 17일 에너지업계의 요구가 대체로 반영된 정책을 발표했는데 발표하기 전인 2월 22일, 3월 7일, 4월 17일 모두 세 차례 엔론 측과 접촉했다. 이후 엔론이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도 두 차례 더 접촉, 지난해에만 모두 다섯 차례 만났다. 미 언론은 엔론에 거의 제한 없이 백악관 접근이 허용된 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 대한 대표적인 특혜는 캘리포니아 단전사태를 이유로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석유개발을 허용한 것과 업계에 대한 갖가지 세금 감면 혜택. 부시 행정부는 이 같은 특혜들이 엔론의 로비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입게될 정치적 타격을 우려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더라도 면담록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지연전술로 나가기로 한 것 같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