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개편은 한마디로 국민의 기대와 시국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인사다. 임기 1년 동안 온갖 ‘게이트’로 얼룩진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지향점이나 청사진도 없이 오직 오기와 고집으로 밀고가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비리와 부패로 국가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시기인 만큼 참신한 인사들이 가급적 많이 입각해 난국 극복에 앞장서길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단행된 개각 내용을 보면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꾸지 않았고 새로 입각한 사람 역시 전문성이나 참신성이 없는 실망스러운 인사다.
국무총리는 그대로 유임된 데다 정치권 출신 대신 기용한 인사들도 대부분 적임자라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특히 대북(對北)협상에서 소신껏 대처했다는 평을 받은 홍순영(洪淳瑛)통일부장관이나 ‘게이트’처리에 비교적 소신을 지켰다는 최경원(崔慶元) 법무장관의 교체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론을 무시하고 ‘자기식대로’ 밀고가겠다는 뜻 아닌가.
수석비서관급 이상 11명 중 9명이 교체된 청와대 비서진의 인사는 그 같은 의도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김 대통령이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정책특보로,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장관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것은 측근 밀실정치를 강화해 청와대가 국정 장악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기회 있을 때마다 탈(脫)정치를 약속한 김 대통령이 다시 정치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최근 인사탕평책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그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개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일부장관과 법무부장관 그리고 11명의 대통령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 가운데 전 비서실장과 박 정책특보 등 6명이 특정지역 출신이다.
“갈 데까지 갔으니 이제는 내 식대로 하겠다”는 발상의, 원칙도 철학도 없는 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