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소 동양철학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다른 외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198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한국지사의 영업부문 부대표로 처음 부임해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평소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은 차이를 느꼈다. 그간의 한국체류 경험을 통해 외국기업의 처지에서 한국 투자환경의 장단점과 개선점을 몇 가지 언급해 보고 싶다.
▼무조건 임금인상 요구▼
투자대상국으로서 한국은 장점도 많다. 전산 분야에 교육을 잘 받은 우수인력이 풍부하며 근로자들도 부지런하고 헌신적이다. 실제로 한국 근로자들을 접해보고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또한 연관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어 원자재 조달이 쉽고 정보통신, 전기, 가스, 운송 등 기초 인프라도 잘 정비되어 있어 외국기업이 영업 활동을 영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울러 근로자 및 관리자들의 산업 마인드도 잘 형성되어 있고 국제경제에 대한 이해도 높아 기업을 운영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반면 외국투자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도 있다. 특히 노사관계 대립과 임금인상 이슈는 아주 어려운 문제다. 노사협의는 외국처럼 대화를 통하기보다 대부분 시위나 파업으로 일관하고 임금 역시 낮은 수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인상부터 요구해 결과적으로 회사의 수출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 처음 부임하는 외국 비즈니스맨은 품질의 우수성보다 인간관계에 많이 의존하는 한국식 상 관행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업활동 규제관련 법령과 규정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원칙과 해석이 달라 혼란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다. 관련규정의 간결화와 국제적 표준화 작업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환경면에서 애로사항은 가족과 함께 한국에 부임하는 주재원의 경우 대부분의 외국인 학교가 미국식 교육과정 위주로 되어 있고 타국 출신 주재원 자녀를 위한 학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아울러 교통체증, 공해, 의사소통 등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국정부와 기업에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한국정부의 정책과 특혜는 비교적 투명한 편이지만 노사문제에서 순방향적 개입, 투자유치를 위한 PR 활동 등에 정부의 역할이 좀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사갈등과 임금인상 문제는 매스컴을 통해 해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끼쳐 투자유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문제에 밀접히 관여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조성하고 노동문제의 예측 가능성을 증진시키길 바란다. 신규투자 유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미 투자한 외국기업의 투자 유지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한국 기업은 외국투자자에게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노사간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부정행위로 인한 낭비와 비능률을 제거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나 지금이나 한국시장의 가능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이 국제시장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좋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을 생산 근거지로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등 인접 아시아 국가들에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기업들이 한국을 아시아 지역의 수출 근거지로 활용하면 아주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정치 불안정과 전쟁 발발 가능성이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인의 우려사항이었으나 실제로 한국에서 살아보니 이런 불안 요소들은 거의 문제가 없으며 살기에도 안전한 나라다. 국가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국은 자본투자이익률이 높은 적정 투자국이며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나라다.
▼기업활동 규제 너무 많아▼
1993년 한국을 떠나 다음 발령지로 근무지를 옮겼으나 나와 내 가족에게 한국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 제2의 고향이다. 97년 현 직장인 KPMG 컨설팅 한국지사에 부임해 다시 옛 고향을 찾게 된 것을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케빈 니본 KPMG 컨설팅 금융부문 이사
[케빈 니본?]
호주 시드니 기술대학에서 경영과 신용관리를 전공, 1976년 졸업한 뒤 호주 신용관리협회 회원을 지냈고 82년 미국 뉴욕에서 ‘말콤 발드리지 품질평가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84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호주 시드니 지사에 들어가 카드 승인 부문 매니저, 영업부문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88년 6월부터 93년 9월까지 5년여 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서울 지사에 근무하면서 영업부문 이사, 부대표, 대표를 거쳤다. 이후 같은 회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업 담당 부사장 등을 역임한 뒤 KPMG 컨설팅으로 회사를 옮겨 97년 1월부터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