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리는 5월과 6월. 과연 누가 ‘축구’라는 경기의 진수를 펼쳐보일 것인가.
우리는 유명 선수들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라운드의 마법사’ 호나우두, 화려한 기술과 스포츠정신의 화신으로 불리는 피구, 특별한 골감각을 지닌 라울, 그리고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지단이 있다. 일본에서 뛸 선수론 바티스투타와 우아한 플레이를 펼치는 토티, 육중하면서도 세밀한 기술을 자랑하는 카누 등이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선수가 아니라 ‘인간’이다.
요즘 최고의 축구스타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데이비드 베컴을 꼽을 수 있다. 유명한 팝스타와 결혼해 한시즌에 700만파운드(약 126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거물. 손가락을 반지로 치장하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고리를 차고 다닌다. 그러나 베컴이야말로 불쌍한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베컴이 매일 겪는 딜레마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에 늘 자신의 이미지를 맞추고 고급주택을 나서며 오늘은 어떤 차를 탈 것인가 고민하는 그를….
그렇지만 또 다른 면을 갖고 있는 축구스타도 많다. 최근 생애 가장 멋진 골을 뇌종양에 걸린 소년에게 바친 이탈리아 출신 지안프란코 졸라(잉글랜드 첼시)는 그 골을 터뜨리기 2주전에 뇌종양에 걸린 매튜라는 소년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매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자기 만큼이나 연약해보이는 졸라였다. 이에 졸라는 “너를 위해 특별히 가장 멋진 골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하며 매튜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졸라는 약속을 지켰다. 첫 기회가 왔을 때 졸라는 그림같은 발리슛을 터뜨렸다. 물론 졸라는 이골이 터지기전에 이미 매튜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졸라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본 매튜의 가족들에겐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 이야기는 축구스타와 팬과의 관계에 특별한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칠레의 이반 사모라노는 어린이를 위한 의료비를 마련하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6년전 심장수술을 받아 생명을 건졌던 나이지리아의 카누는 그의 명성을 활용해 심장수술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국제아동기금(UNICEF) 홍보 대사인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는 소아마비와 에이즈 퇴치에 힘쓰는 단체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이런 모범적인 삶을 사는 선수들을 신문 한면에 다 채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물론 그들은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70년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빌리 브레머가 나에게 “우리는 신이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브레머는 혼수상태에 빠진 10대소녀 부모의 방문 요청을 받았다. 혹시나 딸이 열렬히 좋아했던 브레머의 목소리를 들으면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브레머의 목소리를 들은 그 소녀는 기적같이 깨어났다. 브레머 또한 이와 비슷한 많은 요청을 들어줬다. 물론 딱 한번만 생명을 구했을 뿐이지만….
그러나 유명선수의 이름과 명성은 큰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아일랜드대표팀의 니얼 퀸을 예로 들어보자. 퀸은 월드컵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4일전 소속팀인 선더랜드와 아일랜드대표팀의 특별한 경기에 참가한다. 자신의 20년 축구인생을 기념해 열리는 이 경기로 퀸은 100만파운드(약 18억원) 이상을 번다. 퀸은 이 거금을 선더랜드와 더블린에 있는 아동병원에 기부할 예정이다. 자신을 위해선 단 한푼도 쓰지 않는다. 아마 축구선수론 퀸이 100만파운드를 선뜻 기부한 첫 선수일 것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축구스타가 아닐까.
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robhu@compus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