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놀이'
《“아이에게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줬더니 ‘고맙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해요. 1주일 용돈을 하루에 다 써버리던 버릇도 이제는 없어졌어요.” 주부 유재희(유재희·37·경기 고양시 덕양구)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성민군(10)의 달라진 생활 태도를 대견스러워하고 있다. 아들이 얼마 전에 열린 ‘어린이 경제교실’에 다녀온 뒤 1주일마다 받는 용돈 2000원의 쓰임새를 용돈 출납장에 일일이 적고 계획적으로 용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학용품이나 장난감도 쉽게 버리고 3만원짜리 게임CD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달라고 떼를 쓰던 버릇도 없어졌다. 유씨는 “영어 수학 등 학과 공부 만큼 돈의 가치 등 경제 개념을 일찍부터 몸에 익히는 경제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며 “아이가 실용적인 경제 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경제교육 강좌를 계속 듣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활 속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경제의 기본 개념을 일찌감치 배우고 체험하게 하는 ‘어린이 경제교육’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활 속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경제의 기본 개념을 일찌감치 배우고 체험하게 하는 ‘어린이 경제교육’이 인기를 끌고 있다.
▽조기 경제교육 붐〓경제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는 ‘네오머니’는 지난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월 1회 무료 어린이 경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6일 열린 강좌에는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려 접수 첫날 100여명의 정원이 마감됐다. 지난해에도 경기 일산과 부천의 초등학교 2곳의 요구로 6학년생 135명에게 경제교육 특강을 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와 방학을 이용한 어린이 경제캠프도 늘고 있다. 서울 신세계백화점은 겨울방학 동안 어린이 경제교실을 운영했고 현대백화점은 3월부터 서울(무역센터점, 천호점, 미아점)과 경기 지역(부천점)의 4개 지점 문화센터에 어린이 경제교육 강좌를 개설할 예정이다.
어린이 경제교육 전문업체인 ‘어린이 세상’이 21일부터 4박 5일 동안 충남 천안에서 연 어린이 경제캠프에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학생 43명이 참가해 직접 창업을 하고 물물교환과 화폐를 이용한 상품교환 등을 체험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는 주 1회 3개월에 8만원선, 어린이 경제캠프는 5만∼34만원까지 다양하다.
어린이 경제서적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어린이 경제서적이 현재 10여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어린이 경제서적 전문 출판사까지 등장했다.
서울 교보문고 관계자는 “2000년에 비해 지난해 어린이 경제서적 매출액이 2∼3배 증가했다”며 “아동도서 베스트셀러 목록 중 한 두 권은 어린이 경제서적일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조흥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어린이들이 가입하는 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경기대 엄길청(嚴吉靑·경영학) 교수는 “97년 경제위기를 체험한 30, 40대 젊은 부모들이 자녀의 조기 경제교육에 눈을 돌렸다”며 “어릴 때부터 실용적인 경제개념이 몸에 밴 ‘스마트 키즈(smart kids)’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등 어린이 위한 인터넷 강좌▼
한국은행 홈페이지(www.bok.or.kr)에서는 금리, 물가, 환율 등 경제 용어를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풀이한 자료를 제공한다. 세계의 다양한 화폐와 화폐의 역사 등을 소개한 화폐박물관을 인터넷으로 둘러볼 수도 있다.
통계청의 어린이 통계교실(http://mirae.nso.go.kr)에서는 통계의 개념과 기능 등을 만화로 설명한다.
무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어린이 경제박사 코니(www.connie.co.kr)’는 실력별로 10단계로 나눈 ‘○ × 경제퀴즈’도 제공한다. 체계적인 용돈 관리법 작성 요령을 익히고 용돈 출납장과 예산 결산서 등을 인터넷으로 작성할 수 있다.
‘이코비(www.ecovi.co.kr)’에서는 경제 만화와 동화를 이용한 경제이야기를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게임을 통해 경제를 배울 수도 있다. ‘이코노아이(www.econoi.co.kr)’에서는 광고 속 경제이야기나 생활 속의 경제 상식 등을 제공한다.
▼상품구입 하기 전엔 반드시 '왜' 따지도록▼
▽경제교육은 이렇게〓상품을 구입하기 전에 아이들이 왜 물건을 사려는지, 비슷한 물건을 갖고 있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등을 스스로 따져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직접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물건을 비교해 물건의 가치와 가격 등을 비교해 선택하도록 하라는 것. 물건의 품질과 가격 등에 대해 부모가 조언하는 것도 좋다.
일정 기간마다 용돈을 주고 용돈 출납장을 작성해 보면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배우게 된다. 초등학생은 주 1회, 중고교생은 월 1회 용돈을 준다. 자녀와 상의해 용돈 지출 항목과 액수를 정한 뒤 하루 단위로 용돈을 주고 관리 능력이 생기면 기간을 늘려가는 것이 좋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 용돈을 미리 주지 않는다. 용돈이 남았다고 다음 용돈을 줄여서도 안 된다. 용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아이 이름으로 은행 통장을 만들어줘 이자가 늘어나는 원리도설명해준다. 저축을 통해 절약정식과 보람을 느끼도록 한다.
자녀와 함께 상점, 시장, 은행 등에 나가서 현장 체험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부모가 가계부를 쓰고 상점 등에서 영수증을 받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면 교육효과도 더 크다.
▽주의할 점〓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경제 용어를 억지로 설명하면 아이들이 싫증을 내기 쉽다. 주식을 설명할 때는 경제활동에서 주식투자의 의미 등을 먼저 설명해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이나 투기법 등 비뚤어진 경제 의식을 심어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캠프나 강좌를 선택할 때는 강사의 자질과 강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인천교대 한진수(韓鎭守·사회교육) 교수는 “조기 경제교육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합리적 선택과 소비 등을 배우는 과정”이라며 “부모의 욕심이 너무 앞서 돈 잘버는 법만 강조하면 아이가 지나치게 타산적인 성격이 되거나 물질에 집착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