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시리도록 아픈 사랑'이었다.
1월 30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은 비련의 여 주인공 마르그리트에게 완전히 함몰 당했다. 강수진의 신들린 듯한 춤과 연기는 집요하게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존 노이마이어는 화려함 보다 주인공 마르그리트에게 상당한 비중을 두는 절제된 연출로 드라마 발레의 묘미를 살리는 모험을 감행했고, 모험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일등 공신은 마르그리트 강수진이었다. 사교계를 주름잡는 화려한 매춘부, 진정한 사랑에 눈뜨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는 비련의 여인 역을 강수진은 현란한 기교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강수진의 마르그리트는 심연 속에서 우러나오는 내밀한 것이었다. 순간 순간의 순발력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로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3막에서 연인 아르망이 돈으로 사랑을 보상하려 한 것을 알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그려진 그 절망감, 병든 몸을 추스리며 옛 사랑을 회상하는 창백한 눈빛 연기는 섬뜩함을 넘어 온 몸을 전율시켰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백미는 아르망 역 로버트 튜슬리와 강수진의 앙상블이다. 연속되는 어려운 테크닉부터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교감, 자연스런 연결 동작까지 두 사람은 그 옛날 백조의 호수 에서 보여준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의 전설적인 파트너십을 뛰어넘는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1막에서는 스타카토 식의 끊어지는 동작으로, 2막에서는 밀착한 상태에서 연속되는 고난도 테크닉으로, 3막에서는 템포와 격렬함이 더욱 강화된 움직임으로 차별화 시킨 노이마이어의 2인무 안무를 강수진의 유연한 뽀르 드 브라(팔의 움직임)와 미세한 손가락 놀림, 그리고 다리 동작까지 동시에 엮어내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창조해냈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는 '오디세이'에서도 그랬듯 방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중심이 되는 축을 한 곳에 설정하고 의상이나 무대장치, 음악 등의 힘을 빌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카멜리아의 여인'에서도 프레드릭 쇼팽이 마치 이 작품을 위해 별도로 작곡을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 해석력, 마르그리트를 중심으로 한 춤과 연기의 뛰어난 조합, 유르겐 로제의 간결한 무대장치와 소품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드라마 성을 살려내는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주었다.
다만 3년 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발레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보다 세종문화회관의 넓은 무대와 부분적으로 빈약한 조명은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에 동화되어 극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을 가끔씩 단절시켜 아쉬움을 남겼다.
환상적인 내용의 계산된 대본, 의도된 다양한 캐릭터의 설정, 정형화된 움직임 등 클래식 발레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에게 카멜리아의 여인 은 현실적인 소재와 자유로운 구성, 파격적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의 안무 또한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다. 알렉상드르 듀마 피스의 소설과 쇼팽의 음악은 150년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존 노이마이어와 강수진이라는 걸출한 무용가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한 편의 격조 있는 드라마 발레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한국의 발레 팬들은 감동의 현장에 함께 하는 특별한 혜택을 누렸다.
장광열(무용평론가·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