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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박응격/새 내각, 새 일 벌이지 말라

입력 | 2002-01-31 18:10:00


DJ정부의 1·29 개각 및 청와대 비서진 개편에 대한 각계의 실망과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번만은 과거 졸속인사의 관행을 훌훌 털어 버리고 투명성과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에 입각해 ‘이만하면 됐다’고 국민이 안도할 수 있는 개각 및 청와대 요직개편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정권의 잔여임기를 1년 정도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국정 목표의 초점을 과연 어디에 맞추고 개각을 단행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여론이다.

▼선심정책-정치간여 안돼▼

DJ정부 인사정책의 최대 과오는 무엇보다도 역대 정권 가운데 장관들을 가장 빈번하게 교체해 국정의 일관성을 상실케 한 것이다. 이 정부 4년 동안에 교육부와 건설교통부 장관은 무려 7번, 통일 법무 보건복지 노동부 장관은 6번이나 교체해 이들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8∼9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진기록을 세웠다. 이같은 단명 장관의 양산은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충분한 인사검증을 않아 나중에 각종 비리와 무능으로 정책 혼선이 드러나며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수시로 인사교체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사정책의 실패는 정책 실패로 이어져 정부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 정권의 최대 정책 실패라 할 수 있는 의약분업을 포함한 의료보험 정책과 대학입시를 포함한 교육정책의 난맥상은 바로 정부 인사정책의 실패에 기인한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은 제왕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저서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군왕이 만백성을 위한 성군이 될 수 있는 첫 번째의 덕목은 나라가 필요한 인재를 두루 살피어 선발해 적재 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대외적으로 국가 간의 무한경쟁이 지속되고 대내적으로는 실업문제와 각종 압력집단에 의해 불특정 대다수의 국민이익이 잠식당하고 있는 어려운 때에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정부요직 개편을 빈번히 단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18세기의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저서 ‘법의 정신’에서 정체 원리의 부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체의 원리’가 일단 부패하면 가장 좋은 법도 악법이 되어서 국민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 원리가 건전하면 악법도 좋은 법의 효과를 가지게 되어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체의 원리’란 정치권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말한다. 이번 정부요직 개편에 대해 ‘정체 불명성’의 소리가 높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한 ‘탈정치 국정전념’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이번의 실망스러운 정부요직 개편으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정권말기의 레임덕 현상이 만연되어 있는 공무원 사회를 어떻게 쇄신해 산적한 국정과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다시 공무원사회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의 깊은 늪에 빠져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고장난 관료사회로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번 요직개편이 민생을 외면한 채 오로지 당리당략에 매달린 채 ‘내각제를 고리로 한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일부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돌파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는 무슨무슨 정책을 새롭게 급조해 국민부담을 가중시키거나 국민을 들뜨게 하는 선심정책은 이제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최대의 정책목표가 아닌 최소의 정책목표의 수행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최소의 정책목표란 아마추어 장관들의 정책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 정책 마무리에 힘써야▼

몽테스키외는 민주정체가 갖는 치명적인 약점인 정치부패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는 오히려 국민에게 해악이 된다고 말했다. 즉 “국민의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패를 은닉하기 위해 국민을 부패시키려고 할 때, 국민은 심각한 불행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심리와 구조를 줄이는 적절한 처방은 무엇일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열린 사회, 즉 법률이 지배하는 법치주의, 독립된 사법부, 언론의 자유, 자율과 책임을 실천하는 시민사회의 확립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수호하는 것이다.

오늘의 위정자들은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책임정치이기 때문에 정책에 실패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당이나 정부는 선거에서 패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역사적 교훈을 뼈아프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박응격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