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안성기 선배가 '흑수선'까지 10번째 작품을 함께 했다. 배 감독님 하면 안성기 선배가, 안성기 선배 하면 배 감독님이 떠오른다. 난 곽경택 감독하고 최소한 11편의 작품을 같이 해 기록을 세우고 싶다."
지난달 27일 영화 '챔피언'의 촬영이 한창인 서울 화양동 숭민체육관에서 만난 유오성(37)은 '친구'의 준석과는 꽤 달라보였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1980년대 스타일로 길게 기른 헤어스타일. 샌드백을 두드리고 가볍게 스텝을 밟는 그는 영락없이 '헝그리 복서'였다.》
경기중 쓰러진 뒤 사망한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 ‘챔피언’의 제작발표회가 있던 지난해 8월이후 첫 인터뷰다.
유오성은 ‘친구’가 전국 820만명의 역대 흥행 최고기록을 세운 뒤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박’을 터뜨린 ‘친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세상이 아직도 ‘친구’ 이야기로 떠들썩할 때 그가 간 곳은 서울 대방동의 액션스쿨이었다. 타이틀전을 앞둔 권투선수처럼 몸만들기에 들어간 것. 지난해 7월부터 하루에 5시간씩 비지땀을 쏟았다. 아직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대한 유오성의 대답은 명쾌하다.
“첫째, ‘챔피언’은 연기도 연기이지만 우선 몸으로 승부해야 하는 영화다. 권투선수로 나오는 내가 ‘풀빵’처럼 부푼 몸으로 영화를 찍을 수는 없다. 둘째, ‘친구’의 흥행이 불확실하던 당시 곽 감독과 이 작품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다른 선택이 없었다. 선택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의 체격은 178㎝, 73㎏. 체중은 변화가 없지만 대신 몸이 근육으로 바뀌었다. 무리한 훈련으로 발목 인대가 늘어나 ‘몸고생’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첫 촬영을 시작한 ‘챔피언’은 현재 30%가 촬영됐고 2월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김득구의 마지막 경기인 레이 맨시니전 장면을 찍는다. 순수 제작비 50억원이 투입되며 6월말 개봉된다.
유오성은 ‘챔피언’이 권투영화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챔피언’은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지 권투영화가 아니다. ‘친구’가 조폭을 소재로 했지 조폭영화가 아닌 것처럼. ‘챔피언’은 한 소년(김득구)의 꿈을 그린 영화다. 당시 권투는 배우지 못하고 몸뚱이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생존수단이자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중 잘 알려진 것처럼 ‘친구’를 통해 친구가 된 동갑내기 곽 감독을 자주 화제에 올렸다.
“난 곽 감독을 흥행 감독이 아니라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존경한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 배우는 배역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아닌가. 난 휴머니즘과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영화가 좋고 그래서 곽 감독과 궁합이 맞는다.”
그는 또 “‘더 복서’ ‘록키’ ‘성난 황소’ 등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지만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며 “내가 배우로서 가득 채워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친구’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고의 액션배우이자 개성파 배우로 부상한 유오성.
하지만 그에게도 92년 대학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뒤 무명의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영화는 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최진실 보디가드 역을 시작으로 ‘닥터 봉’ ‘테러리스트’ ‘아름다운 시절’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 조역의 ‘얼굴 없는 배우’였다. 99년 ‘주유소 습격사건’과 코믹한 캐릭터를 살린 TV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개성 있는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흥행과 인기 같은 단어에는 좀 둔감한 편이다. ‘친구’가 끝난 지 영화 촬영이 없으니까 무척 심심하고 ‘괴로웠다’. 많은 TV 출연이나 말보다는 내 배역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웃음과 비장미’가 공존한다고 평가받는 이 배우의 눈빛은 갑자기 배고픔과 오기로 뭉친 복서의 그것처럼 강렬해졌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