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약관의 환불 규정에 불공정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받은 영어인증시험 토플(TOEFL)의 주관 기관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이 현행 환불 규정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4년간 국재 토플 응시 인원
연도
1998
1999
2000
2001
응시자수 (명)
6만7000
7만9000
12만1000
5만8000
ETS는 1일 국내 토플 대행기관인 한미교육위원단을 통해 공정위에 전달한 공식 해명서에서 “시험을 취소할 때 응시료 일부를 부담해야 하고 연기할 때 추가 응시료를 내도록 한 환불 규정은 추가 업무 처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이 규정은 토플이 치러지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기 때문에 한국도 계속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ETS의 해명서와 토플의 환불 규정을 정밀 검토한 뒤 불공정 약관 혐의가 인정되면 즉각 시정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토플과 토익(TOEIC), 텝스(TEPS) 등 영어인증시험의 환불 규정이 응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초 세 시험의 환불 규정에 불공정 약관 혐의가 있다고 보고 해당 기관에 이를 통보하고 해명서를 내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토익과 텝스를 각각 주관하는 국제교류진흥회와 서울대 텝스사업본부는 공정위에 환불 규정의 개선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토플의 주관 기관인 ETS는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되는 환불 규정을 한국에만 예외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밝힌 것.
한미교육위원단 관계자는 “응시자들의 수험 편의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검토 중이지만 환불 규정만큼은 한국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ETS의 최종 결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토플의 경우 시험 시작 3일 전까지 취소하면 응시료 110달러 중 65달러만 환불해 주고 연기하면 40달러의 추가 응시료를 받고 있다.
또 토익은 접수 마감 후 시험 연기나 취소 시 응시료 3만원의 절반인 1만5000원을 쿠폰으로 환불해주고 텝스는 접수 마감 후 2주 이내에 한해 응시료 2만5000원 중 1만1000원을 공제한 뒤 환불해주고 있다.
공정위는 절차에 따라 약관 심사위원회를 열어 세 시험의 환불 규정을 검토한 뒤 불공정 약관으로 판정 나면 환불액을 지금보다 대폭 올리는 쪽으로 약관을 개선하도록 해당 기관에 시정 명령을 내리게 된다.
공정위측은 “시정 명령에 대해선 60일 이내에 이의신청이 가능하며 끝내 시정 명령을 거부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이 추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령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내리더라도 세계적인 시험기관인 ETS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공정위의 시정 명령에 맞서 ETS가 법정소송 등을 불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칫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비화될 수도 있으며 양측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ETS가 한국에서 토플시험을 중단하는 최악의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공정 약관에 대한 시정 명령은 국내외 기업과 단체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잘못된 약관으로 인한 응시자들의 피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