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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나서]시간을 뛰어넘어…

입력 | 2002-02-01 18:02:00


토요일마다 이 난을 장식했던 허문명 기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실 겁니다. 허 기자는 지금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의 원시림에 있습니다. 불화가 깊어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곳에서는 어떤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수첩에 가득 담아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미의 숲’이라니까 여러 상념이 떠오르는군요. 본디 ‘책’과 ‘숲’은 관계가 깊습니다. 책을 뜻하는 독일어 ‘Buch’는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말이라죠. 유럽에서 어원적으로 ‘책’은 ‘숲’ 또는 ‘나무’와 같다는 얘깁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출판사에도 ‘나무’와 관계된 이름이 많습니다. 푸른숲, 열림원(悅林院), 생각의나무, 솔….

보르헤스 또는 마르케스의 주술적 리얼리즘 소설속에서도 우리는 ‘도서관’이라는 신비한 ‘숲’에 대한 ‘남미적’(!) 통찰들을 보게 됩니다. 책들로 가득찬 도서관이란 그야말로 글자들의 숲에 다름아닙니다. 천년왕국을 지나 영생할, 기호들이 숨쉬는 거대한 마법의 공간이지요.

쓸 데 없이 장광설이 길어졌네요. 이번 주 ‘책의 향기’ 1면은 천재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생생하게 다룬 ‘뷰티풀 마인드’를 소개했습니다. 2000년 ‘아름다운 마음’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번에 제목을 바꿔 다시 출간됐음에도 이 책을 재론하는 이유는, 첫 출간 당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소홀함을 자책하는 것이기도 하고, 훌륭한 책은 속보 경쟁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거대한 ‘글자들의 숲’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친 탓이기도 합니다. ‘뷰티풀 마인드’는 영화로 제작돼 다음주 초 극장에서 개봉됩니다. 책 제목을 바꿔 재출간한 것도 영화 개봉을 겨냥한 듯 합니다.

영상매체와 문자매체로 표현된 천재의 삶을 비교해 보고, 너도밤나무 위에 글자가 새겨지던 시대를 지나 영상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자’가 쥐고 있는 힘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아참, 영상문화도 숲과 무관하지는 않죠. 초창기 필름의 원료였던 ‘셀룰로스’는 나무 펄프에서 추출됐으니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