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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를 합시다]서천범/콘도서 용품 슬쩍 "이게 뭡니까?"

입력 | 2002-02-04 18:20:00


“때밀이 수건을 아침에 100개 갖다 놓으면 영업시간이 끝난 후 35개가 분실된다. 레저업체 이름까지 찍힌 수건이 분실되고, 목욕 후 얼굴에 바르는 로션이 수시로 없어지며,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기도 분실된다.”

어느 동네 목욕탕 얘기가 아니다. 중산층 이상이 즐겨 찾는 고급 리조트 내 사우나탕의 현실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우리 레저문화의 현주소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일만 열심히 하는 ‘일 개미’에서 ‘놀 줄도 아는 개미’로 바뀐 지 20년이 채 못된다. 일만 할 줄 아는 개미시절에는 일을 하지 않는 여가시간은 단지 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등 소위 3저에 힘입어 우리 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지속했고, 국민소득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86년 아시아경기와 88년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면서 우리 국민이 비로소 레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 레저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골프장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 레저산업은 높은 성장세를 지속했다. 콘도 회원권을 소지하는 것이 중산층을 나타내는 징표로 간주되면서 콘도 산업이 호황을 구가했다. 고급 스포츠인 골프나 스키도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즉 90년 4000실에 불과했던 객실 수가 지난해에는 2만실로 늘어났고, 스키장 수도 같은 기간에 6개소에서 13개소로, 골프장 수는 45개소에서 158개소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골프장 스키장 콘도 등 대부분의 레저시설은 선진국 못지 않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의 레저문화는 어떤가. 사우나탕의 수건이나 화장품은 물론이고 복도에 걸어놓은 액자나 객실의 수도꼭지까지 남의 눈을 피해 슬쩍 가방에 집어넣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골프장도 예외는 아니다. ‘매너의 스포츠’인 골프를 치면서 큰소리를 치거나 거액의 내기 골프로 늑장 플레이를 해 다른 팀의 불만을 초래하기도 한다. 플레이를 마친 후 샤워장에서는 수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꼴불견들이 적지 않다.

스키장은 또 어떤가. 스키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왕초보’가 몇 번 스키를 타보고는 상급자 코스로 가서 사고를 낸다. 안전요원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코스를 권하면 대뜸 욕부터 나온다. 또 곤돌라나 리프트에서는 금연으로 되어 있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흡연을 하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는 아래 슬로프로 던진다. 눈이 녹은 봄에는 직원들이 동원되어 쓰레기 대청소를 해야만 한다.

소득수준 1만달러 시대에 5000달러 수준의 저급한 레저문화의 사례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미숙한 레저문화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레저시설을 찾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겨주지만 결국 본인도 피해를 보게 된다.

월드컵 대회를 전후해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텐데, 이런 저급한 레저문화가 외국인들을 쫓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소득수준에 걸맞은 올바른 레저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할 때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