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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고광석/"韓流열기 寒流될 수도 있어요"

입력 | 2002-02-05 18:31:00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 중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우리 음반의 포스터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한국의 유행음악’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표현이었다. 한류 시대는 ‘N.R.G.’,‘ H.O.T.’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10대 힙합 전사들이 열었던 것이다. 이후 한류는 드라마나 음식은 물론 상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며 문화 전반의 현상으로 확대되었고, 우리 언론 매체들도 한류라면 앞다투어 보도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수입으로 연결되지 못해▼

이렇게 한류가 타오르면서 한류를 이용한 우리 상품 수출의 극대화 전략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한류도 한번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1년 9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北京)사무소가 베이징주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류와 관련한 한국의 언론보도가 사실적이라는 의견이 53%인 반면 과장되었다는 것도 42%를 차지했다. 이것은 한류라는 현상이 사실이긴 하나 다소 왜곡된 것으로 느끼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같은 시기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는 베이징의 청소년, 성인 등 500명을 대상으로 한류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1%가 한국의 대중문화에 접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호감도에서는 37%가 ‘좋다’고 한 반면 55%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이는 우리 문화가 중국의 도시민들에게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계층이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한때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붐을 이루다가 사라졌듯이 말이다.

우리는 한류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감추어진 빛과 그림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한류의 주요 고객층이 도시 청소년들이라는 점은 한 줄기 빛이다.

이들은 1가구 1자녀로 자라나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어서 소황제 소공주(小皇帝 小公主)로 불리는 계층이다. 최소 연간 소득이 1인당 3000달러가 넘는 연안 도시에서 이들의 실질적 구매력은 결코 우리 못지않다. 우리 돈 13만원짜리 공연장 A석이 매진되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이 힘은 우리 연예인들의 광고 출연으로 이어져 이미 몇몇 인기인들은 국내 개런티의 몇 곱절이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한 우리의 대중 스타들은 국내 시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을 뚫고 올라 왔다는 점에서 잡초와 같은 생명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빛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류의 열기가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 점이다. 중고등학생 수만 해도 9000만명을 넘지만 CD와 테이프의 복제가 판치는 중국에서 음반판매가 5만장을 넘기면 대박이나 다름없다.

한류가 실속 없이 지나치게 과열될 경우도 문제는 있다. 우리 정부 차원의 지원이 두드러질 경우 중국 정부의 대응조치도 예상할 수 있다. 한류를 이용해 일회성 돈벌이를 노리는 저질 공연기획사들의 범람도 문제다. 이미 이들은 겨우 피어나는 한류의 싹을 짓밟았으며, 그때마다 중국 언론은 입을 모아 한류를 비난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러한 그림자들은 언제라도 한류를 ‘한류(寒流)’로 바꿀 수 있고, ‘한류(恨流)’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마법사와도 같은 존재다.

중국은 사회질서의 유지를 중요시한다. 중국의 기성세대가 힙합 바지며 원색으로 물들인 머리(그들은 한발·韓髮이라고 함), 뭉툭하고 굽이 높은 구두(발효시킨 만두 같은 구두라고 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과거 우리가 느꼈던 거부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류가 용솟음치고 암표상이 날뛸수록(韓流湧 黃牛忙)’ 경계심은 더해질 것이다.

▼자생할 수 있는 토양 마련을▼

중국언론이 심심하면 우리 유명 연예인들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얼굴사진을 대비하며 흠집을 내는 것이라든가, 성형수술과 지나친 화장을 한국 여성의 특징으로 꼽는 것도 모두 이에 대한 견제구나 다름없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기다렸던 동남풍을 지금 중국의 청소년들도 기다린다. 대륙에 부는 서북풍에는 황사가 실리지만 동남풍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휴대전화의 듀얼 폴더 기능이기도 하고 자극적인 리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동남풍이 일시적인 계절풍으로 그치지 않도록 우리 대중문화가 자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면 된다. 잡초를 제거하고 거름은 주되 중국의 경계심을 유발하는 지나친 리더십은 피해야 할 것이다.

고광석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