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시론]강호성/검찰인사권 총장에 넘겨라

입력 | 2002-02-06 18:39:00


요즘 온 나라가 ‘검찰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떠들썩하다. 며칠 전에는 여야의원들마저 오랜만에 일심동체가 되어 ‘검찰개혁 추진 의원 모임’을 열고 조속히 검찰개혁특별위원회를 국회 내에 설치하겠다고 발벗고 나섰다고 한다. 이러한 검찰 바로 세우기 신드롬을 보면서 검찰독립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곧 검찰이 바로 서겠구나’하는 기대감보다는 ‘또다시 검찰이 정치인들과 권력이 펼치는 정치놀음의 들러리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만 더해지는 것은 어쩐 일인가.

현 정부 출범 직후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며 검찰을 바로 세우겠다고 호언하더니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최근 관계장관회의에서 ‘검찰이 잘못해 정부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검찰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4년 간 대통령 스스로가 검찰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전혀 한 바 없음을 시인한 것이다.

▼'권력에 의한 바로서기' 무의미▼

지난달 17일 법조계 내에서 검찰총장 적임자로 손꼽혀온 이명재 전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때늦은 감은 있으나 검찰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물꼬가 트이는 듯하더니, 같은 달 29일 8개월 간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검찰과 법무부를 무난하게 이끌어온 최경원 법무장관이 별다른 이유없이 경질되면서 검찰 개혁의 분위기가 와해되는 조짐을 보였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문제와 맞물려 5일로 예정된 검사장급 인사가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지연되는 바람에 현 정부의 ‘청와대 파견 검사들의 검찰 복귀’ 결단마저 그 의의가 퇴색하는 듯했다.

‘검찰 바로 세우기’는 어느덧 군사정권 하에서부터 현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가 되어버렸다. 왜 그토록 풀기 어려운 것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권세력이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비등하는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검찰 바로 세우기’라는 감초를 내세우려고 했을 뿐 결코 검찰이 바로 서는 것을 진정으로 바란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바로 선다는 의미는 곧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법질서와 실체적 진실 발견의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검찰이 바로 서는 과정에서 권력의 지팡이를 빌려 일어서서는 안 된다. 권력의 도움으로 검찰이 일어설 경우 여전히 검찰과 권력간의 연결고리가 잔존함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검찰이 바로 서는 작업은 권력과의 완전한 차단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 제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현 정부는 나머지 임기 동안 검찰과 집권세력을 잇고 있는 각종 연결고리를 떼어내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에게 집중되어 있는 실질적 검찰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주고, 검찰청의 업무 중 일반 행정업무와 무관한 권한은 법무장관으로부터 검찰총장으로 이양될 수 있게끔 관련법규를 개정하는 등 검찰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검찰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을 들어 검찰의 자체 개혁에 깊숙이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

검찰 또한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한 개혁을 하면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권력과 야합하려는 정치적 성향을 지닌 소수의 검사를 검찰요직에서 들어내고 검찰 내부에 잔존하고 있는 검찰중립을 저해하는 각종 내규와 관행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검사들 스스로 자기성찰을 통해 법질서의 수호자로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불굴의 의지를 불살라야만 할 것이다.

▼정치검사 요직서 몰아내야▼

다행스럽게도 지금 검찰은 이명재 검찰총장이라는 최고의 선장을 맞이하고 있으며, 송정호 신임 법무장관 역시 집권세력과 지역적 기반이 같다는 약점은 있으나 이 총장의 검찰 자체개혁 작업을 도울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어 검찰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맞고 있다.

현 정권이 지난 4년 간 못한 일을 잔여임기 1년 안에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자조할 필요는 없다. 1년이면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대통령이 어떠한 권력의 외압도 검찰에 가해지지 않게 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실천하고, 검찰조직 스스로가 바로 서기 위한 읍참마속의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다 보면 바로 선 검찰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믿는다.

강호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