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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美에 고위급 정례협의체 구성 제안

입력 | 2002-02-07 18:04:00


정부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한미 고위급 정례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한 것은 ‘햇볕정책도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풀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6일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에서 “외교는 국운(國運)을 좌우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이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정례협의체 추진 배경〓정부는 지난해 초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자 한미일 3국간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차관보급 협의체인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앞날을 크게 걱정했다.

부시 행정부는 특히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불량국가’인 북한의 못된 버릇을 더욱 고약하게 만들어놓았다”고 비판해왔기 때문에 TCOG의 폐지까지도 예상되는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공화당의 대외정책 기조에 맞춰 같은 해 2월 한미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 측에 ‘한미 고위급 정례 협의체’ 구성을 제의해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 측이 TCOG의 기능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포용정책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결국 양자 협의체 구성논의는 ‘없던 일’이 됐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 정부가 ‘정례 협의체’란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지난 1년간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착시(錯視) 현상’을 겪고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정부는 그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보고, 미국을 보고, 세계를 봐온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며 “그러나 ‘9·11테러’ 이후에는 미국(한미동맹)을 통해 북한과 세계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그동안 뭐했나〓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6월6일 북-미 대화를 재개한다고 선언하면서 그 의제로 △북한 핵 활동과 관련한 제네바합의의 이행 개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사업에 대한 검증 가능한 규제와 미사일 수출 금지 △재래식 군비태세 등을 들었다.

정부는 이 3대 의제를 한미동맹의 큰 틀에서 함께 푸는 방식 대신 ‘핵과 미사일은 북-미 중심, 재래식 군비는 남북 중심’이란 역할분담론을 채택해 미국 측을 설득했다. 북한에 대한 재래식 군비 축소 요구는 북한의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을 촉발해 남북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측이 이런 우리 구상에 호응해오지 않았다. 군사대화는 2000년 9월 제1차 국방장관회담이 시작이자 끝이었고 다른 당국간 회담도 정체상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도 ‘당근’을 주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의지가 없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공화당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도 미국의 대북 행보에 발 맞추듯 대북관계 개선에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한미일과 북한과의 관계가 총체적인 답보 상태에 빠지자 대북정책을 조정할 일도 거의 없었다.

▽실기한 것 아닌가〓부시 행정부는 ‘한미간 정례 협의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이지만 그 레벨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집권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기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례 협의체’는 한미관계를 중장기적으로 다루자는 의미인데 부시 행정부가 이를 한국 정부에 주는 ‘선물’로 여긴다면 구성에 진통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전과 이후의 대북 정세 및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현황

출범 이전

출범 이후

△1999.5.25∼28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 방북
▲6.25∼26 TCOG 첫 회의(워싱턴)
△2000.3.13 북-일 적십자회담(베이징)
△4.4∼8 북-일, 제9차 수교회담(평양)
▲5.12 TCOG회의(도쿄)
△6.13∼15 첫 남북정상회담(평양)
▲6.29∼30 TCOG회의(호놀룰루)
△7.26 남북 북-일, 첫 외무장관회담(방콕)
△7.28 북-미, 첫 외무장관회담(방콕)
△8.21∼24 북-일, 제10차 수교회담(일본 지바현)
▲10.7 TCOG회의(워싱턴)
△10.9∼12 북한 조명록 특사 방미(역사상 최고위급)
△10.23∼25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역사상 최고위급)
△10.30∼31 북-일, 제11차 수교회담(베이징)

△2001.1.20 부시 공화당 행정부 출범
△2.26∼28 3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3.13 5차 남북장관급회담 무산(북측의 일방적 불참 통보)
△4.3 4차 적십자회담 무산(북측 연락 없음)
▲5.26 TCOG 회의(하와이)
△6.2∼4 북한 상선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6.6 부시 대통령, 북-미 대화 재개 선언
△8.15∼21 8·15 민족통일대축전(평양)
▲9.6 TCOG회의(도쿄)
△9.11 미국 테러 참사
△9.15∼18 5차 남북장관급회담(서울)
△10.12 북, 4차 이산가족교환 연기 발표
△11.9∼14 6차 장관급회담-남측 대테러 경계태세 문제로 결렬
▲11.27 TCOG회의(샌프란시스코)
▲2002.1.25 TCOG회의(서울)
△1.30 부시 대통령, ‘북한은 악의 한 축’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