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제관계 전문가이자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64)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최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한일 관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그의 제자인 고려대 이웅현 연구교수가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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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한 강경 발언으로 한반도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우선 동북아 문제 전문가로서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한국과 일본, 그리고 통일을 지향해야 할 남한과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이 점점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월 국무장관은 종래의 대북정책이 불변이라며 대통령 발언의 부정적 인상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말하고 있는 것은 '월드컵2002'를 앞둔 한일 양국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일본에서조차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측은 남북화해를 위한 노력을 설명하고, 부시대통령을 설득해 줬으면 합니다. 일본으로서는 현재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는 '유사시입법'을 시의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설득하여 단념케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1990년대 북한연구를 통해서 선생님께서는 북한을 '유격대국가'로 규정하면서도, 그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해 오셨습니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무엇입니까?
"저는 북한체제를 '유격대국가'라고 명명했었는데, 1998년 5월의 경남대 심포지엄에서부터 김정일체제를 '정규군국가'라고 불렀습니다. '유격대국가'란 김일성체제를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북한에서는 99년 6월에 김정일체제를 '선군정치'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규군국가' '선군정치'는 북한인민군을 국가의 중심에 두고, 그 최고사령관이 국가의 최고지도자이며 '혁명적 군인정신'이 사회를 규율하는 기강이 되는 체제입니다. 지금 북한의 딜레마는 군의 딜레마로 나타납니다. 군이 모든 자원을 군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면, 북한의 위기는 타개할 수 없습니다. 군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 현대적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면, 먼저 경제의 현대화가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20세기 초 러시아혁명의 패배자인 나로드니키에서 '잃어버린 가능성'을 모색했었고, 소련공산당과 국가사회주의의 소멸을 가져온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존하고 있는 듯한 푸틴의 러시아는 21세기에 어떻게 변모하리라고 보십니까?
"러시아사의 변치 않는 전통은 강력한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혁명'입니다. 18세기의 표트르 대제의 개혁도 스탈린의 농업집단화도 그 예입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옐친의 '혁명'도 이런 전통 속에서 파악되지만, 거기에는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련의 해체를 가져왔지만, '아래로부터의 개혁', 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형성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채 혼미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강한 국가'를 목표로 내세운 푸틴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대개혁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푸틴의 국가가 아래로부터의 사회의 힘과 경쟁하면서 보다 나은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현재 러시아의 과제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북한연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저명한 러시아사가로 세계학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러시아에서 북한에 이르는 사회주의체제 연구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사회주의는 근대시민사회와 자본주의경제가 시작되면서 19세기 서구에 출현한 유토피아 사상운동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빈부격차, 계급대립 없는 이상적 사회상을 그리며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근대사회의 개혁과 인간화에 공헌했습니다. 이상적 사회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비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세계대전과 무자비한 파괴 속에서 전쟁 없는 세계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습니다. 동시에 세계전쟁 속에서 제국주의적인 지배를 받는 민족의 저항이 강화됐습니다. 여기서 세계전쟁과 제국주의가 없는 세계, 이상적인 세계를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는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의식에서 발생한 것이 러시아혁명이며 중국혁명이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항일전쟁 참가 경험과 소련군의 점령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부터 북한의 사회주의도 탄생했습니다. 이 국가사회주의는 소련에서는 10년 전에 끝났고, 중국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종언은 세계전쟁 및 제국주의의 종말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회주의는 20세기 연구의 기본문제입니다."
-권력비판과 반전, 인권으로 대표되는 선생님의 학문적 경향은 과거 한국에서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는 한국이 당시 군사정권하에 있었다는 점도 있지만, 연구대상(소련, 북한)에 대한 선생님의 학문적 애정과 실증적인 접근방법에 관한 학문적 오해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96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여 66년에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후 오늘날까지 제 생각에 동요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한국(조선)이라는 일본의 이웃나라의 역사연구는 그 나라의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 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든다는 목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상이 되는 나라의 운명에 자신을 어느 정도 동화시키지 않으면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증적인 분석은 타협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식인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개인'이지만, 정부와의 관계는 건설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의 평화도 처음에는 실현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현됐습니다. 한국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의 실현도 꿈처럼 보였지만 무라야마 수상의 담화만큼은 이루어졌습니다. 추구하는 이념은 현실의 전개 속에서 수정이 요구됩니다. 수정이란 보다 멀리 보면서 보다 큰 목표를 세우는 것일 테지요. 낡은 이념에 대한 향수에 젖어 태만하게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를 중심으로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실천의 장에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신질서 형성에 일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아주 어려운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회주의로써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면 그것은 존중하고, 평화의 조건 하에 필요한 경제현대화를 원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북한과의 사이에 식민지 지배 청산과 과거 적대관계의 정상화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민지지배의 청산은 사죄와 보상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 보상이든 사죄에 바탕을 둔 경제지원이든 북한이 활용해 준다면 북한의 장래에 커다란 의미가 있겠지요. 일본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 국민은 '납치의혹'과 '괴선박' 문제로 북한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와 국민이 좁은 사고의 틀을 벗어나 동북아에서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미국의 입장을 초월하여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선생님은 20세기 동아시아 역사에서의 일본의 책임을 끊임없이 물어 오셨습니다.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선생님께서 '일본의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에 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일본은 과거의 반성이라는 점에서 조금도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그건 옳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전쟁, 식민지지배에 관해서 반성도 사죄도 필요 없다는 우익세력이 존재하지만, 과거 30년 동안 거듭 쌓아온 반성은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서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사람들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던 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는 그 후 일본정부의 기본방침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초점은 그것을 무효화하고 입에 발린 소리로 만들려는 우익의 압력에 대해서 이를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교과서에도 명기되고 국민들 속에 확립된다면 동북아에서 일본이 한국, 중국과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지역적 협력을 추진하는 한국을 일본도 상당히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본은 1953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 포섭돼 왔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변화한 조건 속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다시금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정치 경제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우익은 지금까지의 방식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전쟁 전이나 전쟁시절로 돌아가라, 또 반미, 반러, 반중, 반한으로 국가의 주체를 세우라는 것인데, 이는 위험한 시대착오입니다. 전후에 걸어 온 길속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고 그 약점을 보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후의 결함으로서 저는 국가의 책임의식 부족과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주의의 결핍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작년 9·11 테러 후 많은 사람들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부터 소련제국의 붕괴와 함께 미제국의 종언, 세계전쟁시대의 종언을 언급하셨습니다. 21세기 세계질서의 변화를 전망해 주십시오.
"저는 일찍이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세계전쟁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고 군사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도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세계전쟁 시대의 종언 뒤에 오는 것은 세계경제의 시대로 일본과 독일이 주역이 될 것이고 지구환경, 자원문제, 빈부격차가 심각해져 인류는 조만간 새로운 유토피아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일종의 페레스트로이카를 함으로써 초강대국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세계경제의 시대는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시대로 현실화되었지만,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터넷과 핫머니의 시대였습니다. 일본은 페이스를 잃고 위기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속적인 국지전에 대신하여 이슬람의 반미테러리즘과 미국을 맹주로 하는 세계연합군의 대항이라는 유례 없는 전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문제의 해결에 의한 미국과 이슬람세계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국이 붕괴하든지 아니면 인류가 공멸하든지 하는 중대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정리=김형찬 기자 khc@donga.com
◆ 와다 하루키는 누구인가
전후 일본 최고의 역사가이자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스탈린 비판의 해인 1956년 동경대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러시아사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러시아연구는 이른바 세계사의 문제로 그의 학문영역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그 후 그는 러일관계(일-소관계)와 남북한 현대사,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현대사의 영역으로 연구대상을 점차 넓히면서 손을 대는 연구주제마다 세계적 수준의 수작들을 산출해 냈다.
그는 1970년대 말까지 '니콜라이 러셀-국경을 초월하는 나로드니키'(1973), '마르크스, 엥겔스와 혁명러시아'(1975), '농민혁명의 세계'(1978) 등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사에서 승자만이 아닌 패자, 성공한 권력만이 아닌 실패한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균형 잡힌 역사관과 권력비판적 시각을 보여 주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러-일관계에 관심을 갖고 '북방영토문제를 생각한다'(1990) 등을 출간하면서, 서구의 변방으로 러시아를 인식하는 구미의 연구와는 달리 세계사 및 동북아 근현대사의 중핵으로서 러시아를 보는 일본적 러시아연구의 토대를 구축했다.
현실분석의 대상으로서의 소련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내가 본 페레스트로이카'(1987), '페레스트로이카-성과와 위기'(1990)로 나타났고, 이는 이후 러시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화의 과정을 단순히 '이행'으로 보는 것이 아닌 '페레스트로이카'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시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에는 1982년에 발표한 '소련의 조선정책'도 번역 소개됐지만, 이후 한국현대사에 관한 본격적 연구서인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1992), '한국전쟁'(1995), '북한-유격대국가의 현재'(1998) 등을 통해서 세계적인 북한 및 한국전쟁 연구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관련 국가의 자료확보, 러시아 중국 남북한 미국 일본 등 다국자료 해독, 실증주의적 분석과 탁월한 균형감각 등을 바탕으로 그 분야만을 전공하는 연구자들도 필적하기 어려운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연구의 폭과 깊이 면에서 미, 중, 일, 러, 남북한 등 어느 한두 국가의 자료만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와다 교수는 1998년 동경대학을 퇴직하여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여전히 북한문제와 한일관계에 관한 학문적, 실천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등을 이끌면서 한국과 일본의 화해 및 협력,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등을 위해 활약하면서, 1995년 출간된 '한국전쟁'의 증보판이자 후속편이라 할 '한국전쟁 전사(全史)'를 탈고, 곧 출간할 예정에 있다.
그는 개인에 투영된 거친 권력의 역사를 차가울 정도로 실증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저서인 '역사로서의 사회주의'(1994)와 그의 독특한 개념인 '세계전쟁시대의 종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반전과 평화, 권력비판과 인권을 축으로 한 역사의 지향점 내지는 역사의식을 뚜렷이 하고 있다. 이런 입장으로 인해 그는 일본 내의 보수세력의 공격과 한국인들의 상대적인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일본의 전후책임을 강조하는 '일본의 양심'이자, 동북아 근현대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웅현(고려대학교 BK-21 동아시아교육연구단 연구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