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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량살상무기 검증없이 평화없다

입력 | 2002-02-17 18:26:00


김대중 대통령은 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세 번째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한에 대한 두 대통령의 이견이 극명하게 드러난 시점의 회담인 만큼, 남북한관계 및 한미동맹관계,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앞날과 관련해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기에, 본지(本紙)로서도 기본적인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화해와 평화 및 궁극적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화해 평화 통일, 이 세 단어야말로 새 세기에 남과 북 및 해외를 통튼 7000여만 한민족이 함께 손을 잡고 한민족 주도 아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성취해야 할 절대적 명제이다.

그러나 이 과제가 원칙의 선언이나 합의만으로, 더구나 상징적 구호만으로 결코 이뤄지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배워 왔다. 세계사적 안목에서, 국가들 사이의 합의문이나 불가침조약 또는 평화협정이 한낱 휴지처럼 파기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한반도만 보아도, 그 사이 획기적인 합의가 성립됐지만 결국 사실상 원점으로 회귀하고 말았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통탄해 왔다. 물론 남북한 사이의 그러한 합의들 하나하나가 한민족이 걸어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당위론적 이정표가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그 아름다운 수사학(修辭學)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고비를 여러 차례 맞이하곤 했었음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원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날은 논외로 하고 현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로서는 1차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대규모 정예군의 휴전선 근접배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 가운데서도 특히 우선적으로 지적하게 되는 것은 핵무기와 생물학무기 및 화학무기 등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이 무기들을 운반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등이다. 이 무기들이 쓰여지는 경우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민족 전체를 공멸시킬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점이 특히 강조되는 까닭은 북한정치체제의 특이한 성격에 있다. 툭 터놓고 말해, 북한의 정치체제는 전형적인 스탈린적 전체주의독재체제로, 이러한 체제는 특정 권력자, 그리고 그 주변 특권계급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복지를 얼마든지 억압한다. 특히 식량난이 극심해진 1980년대 후반 이후만 따져도, 벌써 2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수백만명을 굶기고 죽게 만들면서도, 그리하여 불쌍하게도 국민의 체형이 바뀌게끔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지도자의 환갑이라고 해서 대규모의 축제를 벌이는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염치없는 작태를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비인도적 정권이 이 대명천지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극단적인 비인도적이면서 자신의 국민에 의해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정권이 대단히 위험스러운 무기를 손에 넣었거나 넣으려고 한다는 데서 이 지역 국가들은 긴장하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의 9·11테러는 테러리즘을 국가적 차원에서 후원하는 정권들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의 제조와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협약들에 부분적으로 응함으로써 더 이상 이 무기와 관련해 조야(粗野)하게, 또 위협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음은 인정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리고 이웃나라들이 계속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문제를 중시하는 까닭은 북한이 검증(檢證)에 대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그러한 만큼, 만일 북한이 국제적으로 신뢰할 만한 수준에서의 검증을 충분히 허용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검증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염려를 버릴 수 있게 한다면, 한국정부의 북한을 향한 지원정책은, 아무리 그 지원의 규모가 크다고 해도, 초당적이면서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은 자신의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그것에 연결된 계획들에 대해 한국과 태평양지역국가들이 갖고 있는 의혹을 씻어주기 위해 성의 있는 노력을 최선을 다해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의 완전 중단 및 남북 사이의 반테러리즘 공동선언채택 등이 그 첫걸음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은 단호히 반대한다. 그것은 어떤 명분 아래서든 민족 전체에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화다. 그것을 위해 북한으로서는 대량살상무기 검증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미정상회담이 화려한 외교적 언사(言辭)로써 화장되지 않고 구체적인 정보의 교환과 분석을 통해 이견이 조정됨으로써 한반도평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하나의 확실한 행보(行步)로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한다. 미국으로서도 오로지 그 정신에 투철하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며 따라서 전투기판매와 같은 장삿속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