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의 해군 특수전 여단 극기훈련은 지옥훈련으로 불릴 만큼 ‘악명’이 높다. 아찔할 정도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암벽등반, 7m 깊이의 잠수전투훈련장에 밀어 넣는 수중장애물 극복훈련, 고무보트 메고 달리기…. 데미 무어가 삭발하고 열연한 영화 ‘GI 제인’에 지옥훈련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그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남녀 양궁대표선수들이 이 훈련장에 입소한 게 작년 8월이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바로 다음날 터졌다. 남자선수들이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퇴소해 버린 것. 그러나 여자선수들은 나흘 동안 끄떡없이 버텨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스포츠 무대에서 우먼파워는 유다르다. 196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경기사상 처음 은메달을 따며 ‘프라하의 봄’을 엮어낸 것도 여자농구팀이다. 남녀가 함께 하는 종목에서 먼저 세계 정상에 오르는 쪽은 으레 여자다. 사상 처음 세계를 제패했던 여자탁구가 그렇고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휩쓰는 양궁 또한 그렇다. 굳이 지난일을 들먹일 필요까지 없다. 지금도 박세리 김미현이 세계 여자골프를 주무르고 있지 않은가. 그뿐이 아니다. 여자축구는 시작한 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세계 정상에 올랐다. ‘남자는 국내용, 여자는 국제용’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지 싶다.
▷스포츠에서 우리 여성이 남성보다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부터 몸에 밴 참을성을 꼽는 이들이 많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으로 인내와 굴종을 강요당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웬만한 어려움은 이겨낼 만큼 강한 정신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얘기다. 하긴 남자도 힘든 지옥훈련을 통과한 것이나,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서구 선수들에게 거뜬히 이기는 것을 다른 이유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가 하면 타고난 ‘감각’에서 원인을 찾는 이도 있다. 바느질과 자수 등으로 섬세한 감각을 익혀왔기에 특히 손으로 하는 스포츠에 강하다는 주장이다. 골프나 양궁 탁구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게다.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도 남자선수들은 부진한 반면 여자팀은 일찌감치 승전보를 보내왔다. 또 94, 98년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딴 전이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후보에 올라 나흘 뒤 당선되면 한국여성 최초의 IOC위원이 나온다. 이래저래 남자들은 또 기죽게 생겼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말은 적어도 한국 스포츠에선 통하지 않는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