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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밥퍼’ 최일도 목사의 잡채

입력 | 2002-02-18 16:41:00


잡채는 다일공동체의 무료 배식 식단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음식이다. 무엇보다 부드러워 노인들이 좋아하고, 행려자들의 병든 위장에도 최고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도 잡채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까 궁리한다. 전에는 먹지 않던 여러가지 동물과 식물을 기괴한 방법으로 처리해서 시각과 미각, 촉각, 후각, 포만감을 충족시키고 즐거워한다. 생활 수준과 식생활 수준은 비례하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풍요 속에서 정작 음식 본연의 소중함은 잊혀지기 일쑤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드러나듯, 세상은 이제 먹으라고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버리고 있다.

다일공동체의 ‘밥퍼’ 최일도 목사는 음식의 가치를 세상에 일깨우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굶는 사람들에게 산해진미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그저 가장 단순한 요리인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이면 족하다.

최목사는 1988년 겨울, 서울 청량리 역전에서 굶는 이에게 밥을 대접하는 다일공동체를 처음 열었다. 청량리는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출입하는 서울 동북쪽 상권 집약지다. 전면에는 초현대식 백화점이 있지만, 그 뒤에는 채소도매시장, 수산시장, 한약재와 농산물이 거래되는 경동시장 같은 재래시장이 공존하고, 현대빌딩과 고층 아파트 뒤로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또 소문난 사창가도 있다.

온갖 인생이 공존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최목사가 처음으로 대접한 음식은 라면이었다. 그는 무작정 등산용 버너와 코펠을 들고 청량리 역 앞에서 누워 있는 행려자와 알콜중독자, 무의탁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시작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물은 집집마다 상점마다 그냥 청했고 거절하는 집이 없었다. 라면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당시 공업용 기름 파동 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한 라면회사가 라면을 한 트럭 분이나 최목사에게 기탁한 것이다.

최목사는 라면으로 여러가지 음식을 창조했다. 갖가지 재료를 넣어 라면 전골도 만들고, 면을 끓여 건진 뒤, 채소들을 넣어서 라면잡채도 만들었다. 다일공동체의 초창기 시절, 이 라면을 맛있게 먹은 한 행려자의 말이다.

“우리는 죽어도 시체가 부패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방부제를 섞었다는 라면을 이렇게 날마다 먹어서 말예요. 설령 공업용 기름으로 튀겼다 해도 까짓거 그게 대숩니까? 덕분에 우리 뱃속에 있던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이 모두 죽고 말았을 겁니다. 이제 이 라면은 우리가 먹는 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될 줄로 믿습니다.”

라면을 밥으로 바꾼 것이 1990년부터다. 노숙자와 무의탁 노인들은 대개 하루 한끼 식사밖에 못한다. 그 한끼 식사가 라면이니, 라면을 끓이던 사람들과 이를 받아먹는 이들의 안타까움이 오죽했을까. 이들에게 부활절(4월)에 밥을 대접하는 것이 당시 최목사에게는 최고 목표였다. 그러나 밥 지을 쌀이 쉽게 마련되지 않았다.

고심하던 최목사에게 어느날 아내 김연수씨가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그 통장의 잔고에 79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이 돈은 사실 최목사집의 그달 생활비였으나, 전전긍긍하던 그를 보다 못한 아내가 생활비를 털어낸 것이다.

최목사는 이 돈으로 10인분 밥을 지을 수 있는 전기밥솥 네 개와 40명분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샀다. 그러나 전기밥솥과 쌀이 있다고 해서 밥을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야 했고, 밥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곳까지 실어나를 도구도 있어야 했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도 최목사는 단 한끼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밥을 지어주겠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최목사는 첫 밥 배식을 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밥을 지을 수가 있었다. 각계 각층에서 재료와 노동력을 대겠다는 자원봉사자가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목사가 이처럼 밥을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사람에게 밥은, 칼로리로 열량을 내며 체력을 유지한다는 단순한 영양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국인은 밥을 먹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음식물이 넘쳐나는 요즘, 각종 모임에서 이것저것 기름진 음식으로 가득 배를 채우고도 밥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입에 익은 음식이라 그렇겠지만, 한국인의 체질 자체가 쌀을 먹어야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수천년 동안 쌀을 먹으면서 몸이 쌀에 맞게끔 진화한 것이다. 수천년 동안 형성된 체질이 한세대의 식습관으로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이렇게 밥을 해결한 최목사에게 두번째로 닥친 문제는 반찬이었다.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기 좋고, 영양가도 높고 맛도 있는 반찬이 필요했다. 그 영순위로 떠오른 음식이 바로 잡채다.

잡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쇠고기는 결을 따라서 가늘게 채 썬다.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어내고 가늘게 채 썰고, 목이버섯은 불려서 한 잎씩 떼어 잘게 썬다. 간장과 설탕,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들어 쇠고기, 표고·목이 버섯에 나누어 고루 무쳐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 식힌다. 오이와 당근은 4cm 크기로 납작하게 채 썰어서 소금에 절였다가 볶아서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양파는 길이대로 채 썰어 기름에 볶아서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달걀도 지단을 부쳐서 채 썬다. 재료들이 준비되면 당면을 끓는 물에 부드럽게 삶아 내어 길이를 두세 번 끊어서 간장과 설탕, 참기름으로 고루 무친다. 당면이 준비되면 볶은 재료와 당면을 한데 넣고 고루 섞으면 된다.

☞ 다양한 잡채요리 레시피 보기

잡채는 한국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누구나 좋아하는 전통 음식이다. 삶은 당면에 여러 채소와 버섯, 쇠고기를 볶아서 넣고 버무려서 달걀 지단과 실백 등을 고명으로 얹으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뛰어나다. 잡채의 ‘잡(雜)’은 ‘섞다, 모으다, 많다’는 뜻이고, ‘채(菜)’는 채소를 뜻하니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이란 뜻이다. 이 잡채는 다일공동체의 무료 배식 식단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음식이다. 무엇보다 부드러워 노인들이 좋아하고, 행려자들의 병든 위장에도 최고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도 잡채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색깔, 맛, 영양, 어울림과 나눔이라는 의미. 잡채는 음식을 먹을 때 맛만 보지 말고, 그 밥상을 위해 노력한 이들과 하나님에게 감사하자는 최목사와 다일공동체의 뜻에도 딱 들어맞았다. 라면을 밥으로 바꾸고, 여기에 잡채라는 맛있는 반찬까지 창조해낸 최목사와 다일공동체. 이들은 이제 이 음식을 먹는 이들이 청량리 쌍굴다리라는 길바닥이 아니라, 밥상에 식기를 얹고, 편안하게 밥과 잡채를 먹을 수 있는 무료 식당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요리과정

1. 오이와 당근을 4cm 크기로 채 썬다.

2. 파를 손질한다.

3. 오이와 당근을 소금·후춧가루로 간하고 기름에 볶는다.

4. 채 썬 양파를 기름에 볶고 기름·후추로 간을 한다.

5. 불린 표고는 기둥을 떼고, 목이도 불려 잘게 썬다.

6. 쇠고기를 결을 따라 채썰어서 준비한다.

7. 쇠고기와 버섯을 갖은 양념으로 무친 다음 기름에 볶는다.

8. 끓는 물에 부드럽게 삶아낸 당면을 간장·설탕·참기름으로 고루 무친다.

9. 소고기와 버섯무침에 당면을 붓고 섞는다.

10. 간을 보충한다.

11. 나머지 재료를 한데 섞고 무친다.

12. 완성된 잡채.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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