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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러시아 음악을 찾아서]죽지않는 작곡의 거장들

입력 | 2002-02-19 17:47:00

모스크바 근교 클린에 있는 차이코프스키 기념관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나의 괴로움을 알 수 있다/홀로, 모든 기쁨에서 떨어져/먼 창공을 바라보노라/아! 나를 사랑하고 아는 이들/먼 곳에 있으니….’

1월 10일 오후 모스크바 근교 클린시 어귀에 있는 차이코프스키 기념관. 모스크바를 벗어나 눈 내린 레닌그라드 대로를 타고 2시간을 더 달렸다. 벌거벗은 자작나무 숲이 끝나면 진회색 전나무가 나타나는, 차이코프스키가 대자연에 묻혀 마지막 9년을 보냈던 하늘색 2층 목조 가옥 위로 눈발이 흩날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가에서 귓가를 맴돌던 차이코프스키의 로망스 ‘다만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의 선율이 또다시 스쳐갔다. 러시아 음악의 궁극은 인간의 이러한 애타는 그리움을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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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는 쇠잔해진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회복시켰습니다. 고독과 정적만이 흘렀던 이 집이야말로 그의 창작의 원천이었습니다.”

마침 휴관일인데도 이곳을 찾은 이방인을 위해 기품있는 중년여성인 박물관장이 직접 안내를 맡아주었다.

이보다 앞서 1월 6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네프스키 수도원 내의 예술가 묘역을 찾았다.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5인조를 위시해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마지막 자취가 한자리에 모여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를 든 수호천사가 흉상을 지키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묘 앞에는 유난히 많은 꽃송이와 견학 온 학생들이 둘러서 있었다. 교향곡 ‘비창’을 초연하고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영면한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살아 숨쉬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있다.

■기념명소 완벽하게 보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수도원 구내에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묘비

러시아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을 추억할 수 있는 기념명소가 도처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에는 무려 2000기가 넘는 예술가의 묘가 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쇼스타코비치, 스크리아빈, 루빈슈타인, 슈니트케…. 예술가를 체제의 충실한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핍박했던 독재자 스탈린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프로코피에프의 비석도 있다. 1953년 3월 7일 대작곡가가 불행한 만년을 마무리짓던 날 모스크바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푸쉬킨은 어떠한가? 러시아 작곡가 대부분의 창작의 샘이 되었던 푸쉬킨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의 애정은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페테르부르크 근교에 그림 같은 전원도시 푸쉬킨시가 있을까.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이카 거리에는 푸쉬킨이 만년에 살았던 집이 역시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한겨울에도 추모객의 인파는 끊이지 않는다. 엄청난 분량의 책이 꽂혀있는 서재와 갖가지 유품들. 이 모든 것들은 후세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교육자료로 쓰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또다른 이름은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원이다. 러시아 5인조의 선두주자로서 음악원장을 지낸 그를 기리기 위함이다. 귀국하던 날 들른 림스키 코르사코프 기념관에서는 작곡가가 아내 나제즈다와 5명의 자녀들과 즐겨 연주했던 50석 규모의 응접실에서 후세들이 가족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낯익은 선율, 그것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3중주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이었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매일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술광장 축제에서 매일 만난 한 청중의 직업은 대학의 청소원이었다. ‘특별한 소수’가 즐기는 것으로 인식된 우리의 왜곡된 공연문화와 달리 이 나라는 평범한 ‘보통사람’이 고전음악과 지난 시대 천재들의 영원한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속에서 예술가 만나

러시아 음악의 실체는 무엇일까? 짧은 식견으로 거대한 음악의 뿌리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러시아를 직접 느끼라고 권하고 싶다. 자작나무 숲과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가진 대자연을 말이다. 그곳에서 유학한 어느 피아니스트에게 들었던 말로 부족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정서와 그것을 탈피하고자 하는 희망에 대한 욕구가 공존하는 음악이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방송작가 poetandlov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