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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세상]조선의‘사농공상’ 이공계 차별과 닮은꼴

입력 | 2002-02-19 18:11:00


이공계 기피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40년 전 경제개발계획 시작 이후 과학기술자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칭송돼 왔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해고, 취업난, 박봉에 크게 시달리면서 불만 세력으로 탈바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자 홀대는 올 대학입시에서 극심한 이과 기피를 초래해 서울공대는 초유의 미달 사태에 직면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공돌이’(공대 출신의 비속어)와 ‘과학도’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내 아이는 절대 공도리 안 시킨다. 공부가 어렵고, 배를 곯고, 직업수명이 짧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핸드폰 만들어 먹고사는 나라다. 그런데 국회의원, 장관, 공무원은 문과 출신이 거의 다 해먹는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기술직 차별은 이공계 기피 사태를 계기로 ‘문과와 이과 문화의 정면 충돌’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조선 이래 우리에게는 과학기술로 도약할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직 천대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만원짜리 지폐에 인쇄된 ‘자동제어 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은 노비였다. 세종 시대의 찬란한 과학 문명은 ‘기생의 아들’을 궁궐의 연구실로 불러들여 종3품까지 승진시킨 세종의 발탁 인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세종의 마차가 행차 중 부서지는 바람에 장형 80대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고독한 조선의 천재’가 능지처참 바로 밑의 극형을 견뎌냈는지, 다행히 살았다면 언제 어디서 눈을 감았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17세기 실학 사상의 등장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근대화를 앞당길 두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45근의 힘으로 2만5000근의 돌을 들어올리는 거중기를 발명해 수원성을 축조한 정약용을 비롯, 대부분의 실학자가 꿈을 펴지 못하고 유배되거나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지금의 세 번째 기회는 어떠한가. 많은 언론이 기술 변혁에 발맞춰 정부의 공무원 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행정고시로 233명, 기술고시로 41명을 뽑았다. 5대 1의 문과 대 이과 채용 비율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현정권이 지역 차별은 어느 정도 없앴지만 훨씬 더 뿌리가 깊은 기술직 차별은 없애지 못했다.

우리의 행정고시와 비슷한 일본의 공무원 1종시험에서는 지난해에 기술계 263명, 사무계 241명을 뽑았다. 오히려 기술계가 많다. 6T를 범국가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해놓고 ‘문과 출신’만 대거 등용하는 정부가 ‘과학기술자를 우대한다’고 외쳐댄들 누가 믿겠는가.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