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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없는 稅風재판 지지부진…대기업 회장들 증인출석 거부

입력 | 2002-02-19 18:13:00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 재판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피고인은 서상목(徐相穆) 전 한나라당 의원을 포함해 6명.

이들 가운데 별도의 개인비리 혐의로 병합기소된 배재욱(裵在昱) 전 대통령 사정비서관을 제외하고는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1심 판결조차 내려지지 않았다.

재판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핵심인물인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이 해외로 도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차장에게 수억∼수십억원을 건넨 대기업 관계자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또 다른 걸림돌이다. 이들은 이 전 차장과 공범 관계인 서 전 의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1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제공한 SK그룹 손길승(孫吉丞) 회장은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4번이나 법원의 증인 소환에 불응했다.

3억여원씩을 낸 극동건설 김세중(金世中) 부회장과 OB맥주 박용성(朴容晟) 회장도 1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다시 소환 통보를 받은 상태.

그러나 서 전 의원의 변호인단은 “강제로 모금한 것이 아니라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므로 이들의 증언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 변호인단은 2000년 6월 대한항공 조양호(趙亮鎬) 회장 등 기업인 21명을 한꺼번에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은 “재판 지연 작전”이라며 반대하고 나서 법정에서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법원은 고심 끝에 손 회장 등 일부만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의 잇따른 법정 불출석에 대해 소환 통보만 계속할 뿐 강제구인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서 전 의원 재판은 첫 공판이 열린 1999년 11월 이후 17차 공판까지 이어졌다.

재판부 관계자는 “이 전 차장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시간이 걸리는 사건인데다 변호인측에서도 별다른 요청이 없어 재소환 통보만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어서 어느 누구도 재판이 빨리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