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한국은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라는 객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상식 밖의 일들이 속출하는 나라로 비치고 있다. 살기는 나아졌으나 이민을 원하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고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부정부패 사례들은 한국 사회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혼란상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와 단순한 이분법적 접근 사례가 많다는 것은 외국에 앉아서 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친일문제, 좌우와 보수·개혁으로 나누어진 햇볕정책에 대한 단순 논리 등은 한국 사회의 적응능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념대립 부패 졸속행정…▼
한국 사회가 허둥대고 있는 모습은 지도자들의 언행에서도 자주 보인다. 금방 드러날 범법 행위에 대한 ‘죽음으로써 무죄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얄팍한 말장난, 모든 것을 ‘한 점의 의혹 없이’ ‘법대로’ ‘환골탈태’ 하겠다는 공허한 말의 약속은 오용이 지나쳐 본래의 뜻이 사라진 채 허구로 남아 있다.
대통령 경제수석이 해저 보물 발굴을 위해 국정원을 동원했다거나, 비리에 연루된 한 국정원 직원이 해외로 도피한 후 사직서를 내는 사태들을 해외 한국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하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한국 사회의 혼란상은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반짝하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려는 ‘졸속행정’에서도 잘 보인다. 학벌 폐지를 위해 취업 원서에 졸업학교를 기재하지 말자는 발상은 ‘졸속행정’의 극치인 것 같다.
또한 자기권한은 모두 주장하나,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실망 역시 책임 소재에 관한 의아심을 갖게 한다.
정치권의 검찰 개입에 대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견해는 시민단체가 실정법을 어겨가면서 특정인의 낙선운동을 하는 경우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졸속행정과 함께 한국 사회의 자신감 상실을 보여주는 징표가 있다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바깥에 매달리는 현상이다.
한국 대학의 문제는 한국 교육의 문제로 외국의 유명한 대학 총장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의 ‘석학’ ‘전문가’와 자문회사는 원칙적이고 일반적인 조언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구체적 문제 해결은 한국인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가 버려야 할 것은 독선적 사고 방식이다. 진리가 특정인의 독점이 아니며, 개인의 신념과 객관적인 문제 해결은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은 각 개인의 이익과 의견이 토론과 충돌을 통해 조정되고 종합되어 공공의 이익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정치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보다는 상충되는 이해의 조절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인식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정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제도화가 절실하다.
제도화의 의미는 사회 구성원이 공통된 가치관이나 규범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공 영역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업무가 수행되는 구조적인 틀이 구축되어야 한다.
제도화의 가장 큰 장애는 권력의 집중과 사회 각 분야로의 침투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각 분야의 장점이 발휘되기 힘들다.
▼민주주의 제도화 절실▼
제도화의 책임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고통치자는 현실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가 돼야 하며, 국가 백년 대계의 제도적 기초를 놓는다는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식인은 외국에서 수입된 사상이나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한국의 당면한 현실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장래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사회 각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각 분야에서 최대한 발휘하고, 집권자들이 그들의 창의성과 전문적인 지식을 한국의 발전을 위해 조절하고 총체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한국인은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계화에도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민족은 분명 제2의 도약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홍영 미국 버클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