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등 기반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 주택단지가 들어서도 서울 도심이나 인근 도시로 접근하는 데 문제가 없는 곳.’ ‘무주택 서민이 입주하도록 해 집값 및 전세금 상승에 따른 주거난 해소.’
건설교통부가 19일 수도권과 광역시의 18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대상지역에 국민임대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경제부 취재팀이 수도권의 ‘그린벨트 임대주택 예정지’를 둘러본 결과 건교부가 제시한 요건과는 동떨어진 곳이 많았다. 이미 공급된 임대주택 중에는 정부의 관리 소홀로 서민 주거안정시설이 아니라 ‘불법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았다.
▽자격 미달 ‘그린벨트 임대주택 예정지’〓취재진은 20일 서울에서 경기 의정부시로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를 따라가며 맞은편의 서울행 차량흐름을 관찰했다. 오전 9시30분경 출근 시간이 지났는 데도 서울 방향 차로를 메운 차량이 의정부시 입구에서부터 도로에 가득 차 있었다.
의정부시 입구에서 30분 이상 걸려 도착한 ‘의정부 동부외곽순환도로’. 도로 우측의 아파트 밀집지역을 지나 북쪽 양주군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포천방향 34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부터는 서울 방향뿐만 아니라 반대편 차로까지 답답한 흐름을 보였다. 의정부시가 대표적으로 꼽는 병목 구간이다.
서울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로 임대주택 예정지로 선정된 ‘의정부시 녹양동 9만4000여평’이 이곳에 있다.
문한기(文漢基) 의정부시 녹양동장은 “녹양지구가 들어서기 전에도 교통체증으로 39번 국도의 8차로 확장공사, 3번 국도의 우회도로 및 대체우회도로 등의 개통이 시급한 곳”이라 말했다.
정부가 19일 1만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임대주택 37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군포시 부곡동 지구. 이곳은 주변 인근에 학교와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주거지로 적합한지 의문시되는 곳이다.
역시 이날 주택 7300가구, 인구 2만1900명을 수용하는 임대주택 예정지로 선정된 성남시 도촌동은 이미 도심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곳이어서 건교부 발표가 생색내기용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늬만 서민용 임대주택〓대한주택공사는 안산시 고잔지구에 작년 말부터 입주하고 있는 16∼18단지 임대주택의 임대료를 15평형의 경우 ‘최초 당첨자 계약조건’을 보증금 1300만원에 월세 8만8000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현재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에 불법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초 경기 광주시에 공급된 민간 건설업체가 지은 임대아파트는 가구당 약 5000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이 형성돼 매매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처음 공급될 때부터 약 20%가량이 암암리에 제3자에게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 전월세의 50∼60%인 국민임대주택은 당첨을 받은 최초 당첨자가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돼 있지만 최근 수도권의 전월세난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 민간업체가 지은 임대아파트는 2년6개월이 지나면 일반 아파트로 분양되기 때문에 입주 시작 때부터 아예 일반 분양아파트처럼 거래되고 있는 것.
건교부도 내부보고서에서 “임대주택 입주자의 부적격자 비율이 50년 임대 62.2%, 영구임대 41.4%, 5년 임대 및 사원임대 32.2%로 평균 42.0%에 이른다”며 “특히 민간업체 건설 임대주택이 전체 임대주택 중 50% 이상이어서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에 대한 기여도가 기대 이하 수준”이라고 실토하는 정도다.
▽대안〓지자체나 주공 등이 도심의 기존 주택을 매입,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거나 도심재건축 아파트 일반 분양물량을 임대주택사업자에 우선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한주택공사 박신영 수석연구원은 “홍콩의 경우 도심지에 위치한 역세권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다가구 등을 매입해 저소득층에 저가 임대하고 있다”며 “이 경우 해당주택이 임대용에서 퇴장하지 않고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임대사업자로 구성된 임대주택조합에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분에 대한 우선청약권을 주면 임대아파트의 재고량을 확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의 불법 투기 활용을 막기 위해선 임대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업체에 관리비 일부를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