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실험이라니, 어떻게 할 작정이야, 훈련장에 애인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히딩크가 너무 뻣뻣하다는 인상이 짙긴하다. ‘킬러 부재’를 한탄하면서 “이 나이에 내가 하리?”라고 푸념한 것은 분명히 경솔했다. 그럼에도 그를 격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없으니 이대로 가자는 체념이 아니다.
우리는 히딩크가 감독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독은 자신의 축구철학에 따라 선수를 조련하고 결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책임을 지고 있다. 그에 따라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감독의 선수 선발과 전략은 다수결로 합의하거나 조정할 사항이 아니다. 이를테면 홍명보 윤정환은 언제 쓸 거냐는 식이다. 둘 다 뛰어난 선수다. 홍명보는 말할 것도 없고 윤정환은 그 공간의 도상학으로 인해 ‘축구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패라도 버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아쉽게도 윤정환의 체력은 세도르프나 다비즈를 모델로 하는 히딩크식 축구에 맞지 않는다.
언제까지 실험만 하느냐는 비난도 있다. 실험? 그것은 실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경기종료 5분을 남기고 의표를 찌르는 선수 교체를 하거나 상대의 변칙에 대응하여 이제껏 훈련한 내용을 상당부분 수정할 필요도 있다.
최종 엔트리 선정도 그렇다. 히딩크는 90%는 결정했고 나머지 10%가 고민이라고 자주 말했다. 듣기 따라서는 서너명 테스트하면 끝날 것 같기도 하고 고종수 홍명보 등 부상 선수의 회복을 기다리는 말로도 들렸다.
하지만 누가 어떤 맥락에서 선발되느냐에 따라 나머지 90%가 영향을 받는 게 축구다. 그 10%가 누구냐에 따라 송종국의 위치가 달라지고 이천수의 임무가 변하며 아예 어떤 선수는 탈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실험을 늦봄까지 끌어서는 안되지만 최선의 조합을 찾기 위해 초봄까지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히딩크 효과’는 간접적인 면에서 뚜렷하다. 선수들이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우선 반갑다. ‘원터치 종패스’에 주눅들어 책임회피성 패스로 젖어있던 선수들이 공을 자연스럽게 다루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전술적인 판단이나 순간 스피드는 많이 나아졌다. 걷는 선수가 줄었다. 이번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적어도 미드필드만큼은 확실히 장악했다. ‘컴팩트 사커’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어쨌든 관건은 16강이다. 우연성이 강한 축구의 특이점 때문에 어쩌면 손쉽게 16강을 통과할 지도 모른다. 97년 브라질대표팀의 월드투어 당시 우리는 잠실에서 호나우두와 히바우두를 꺾기도 했다. 감독이 현지에서 경질된 상황에서 오히려 ‘불굴의 투혼’을 자랑한 일도 있다. 그렇다면 아예 감독 없이 출전해서 ‘하면 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대망의 월드컵 1승을 낚을 수는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같은 우연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을 데려온 것이다.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3부리그 수준의 북중미 골드컵 한두 경기로 총체적인 진행상황을 뒤흔들 일이 아니다. 100일이라면 아직 충분하다.
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