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조그만 노력이 한국인 징용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보상받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한국인 징용피해자의 ‘대부’로 불리는 일본 ‘강제연행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 야노 히데키(矢野秀喜·50)는 20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3월1일 대전에서 열릴 ‘일본제철 징용피해자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준비하기 위해 18일 내한했다.
일본 도쿄시청의 공무원인 야노씨가 한국인 징용 피해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7년 전이다. 95년 2월 일제 징용 피해자의 유족 11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의 반환 및 피해배상 소송을 냈을 때부터 이들을 돕기 시작한 것.
태평양전쟁 중 일본제철이 조선인을 강제로 데려와 일을 시킨 뒤 임금을 주지 않은 사실을 밝혀낸 고마자와대학 고쇼 다다시 교수가 다리를 놓았다.
“90년대 초 언론을 통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접하면서 일본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특히 전쟁 피해자 보상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야노씨의 노력은 97년 7월 첫 결실을 맺게 된다. 일본제철이 일제 징용 피해자의 유족 11명에게 1인당 2백만엔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위령 사업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 이는 일제 전후 보상과 관련해 일본 기업과 한국인 징용 피해자 간 최초의 합의였다.
또 99년 4월에는 일본강관이 원고인 김경석씨에 대해 410만엔, 2000년 3월엔 후지코시가 원고 3명과 소송을 준비 중인 4명에게 3억500만엔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조건의 합의를 유도해냈다.
야노씨는 요즘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징용 피해자뿐만 아닌 70만∼100만명으로 추산되는 모든 징용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99년 12월 독일 정부와 기업이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강제노동 피해자 100만∼150만명 전원에 대한 보상을 위해 100억마르크(약5조5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합의안에 서명했습니다. 일본도 독일처럼 한국의 모든 징용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가 소속된 ‘강제연행 전국네트워크’는 일제 하 강제노동과 관련한 재판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지원하는 일본의 12개 단체가 모여 96년 12월 결성했으며 현재 일본인 6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