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듣게 될 욕을 한꺼번에 들은 것 같아요.”
“불법 주차차량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차량 주인이 달려와 사진기를 빼앗으며 반말로 ‘빼면 될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질러 눈물이 핑 돌았어요.”
18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예관동 중구청 3층 소회의실. 지난달 4일부터 36일간 중구청에서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를 해온 대학생 4명이 모여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사무실에 앉아 서류나 정리하면서 대충 시간을 때우겠다는 ‘꿈’이 아르바이트 첫 날부터 깨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불법 주정차 단속과 불법쓰레기 투기 단속 현장에서 시민들은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1월 중순 신당4동 청구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불법 주차 단속을 벌였던 이주현씨(22·여·중앙대 청소년학과 2년)는 실종된 시민 의식에 크게 실망했다. 주차금지 구역에 주차된 차에 딱지를 떼려고 하자 차 주인이 “차량을 옮기겠다”고 해 봐줬는데 30분 뒤에 가보니 문제의 차가 같은 자리에 여전히 주차돼 있었던 것이다.
동양공전 기계과 2학년 강미희씨(20·여)는 상가나 도로에 남몰래 마구 버려진 쓰레기더미를 잊지 못한다.
“이달 초 5명이 한 조가 돼 상가의 무단쓰레기 투기 현장을 단속하다가 규격봉투가 아닌 쓰레기봉지 안에서 신용카드 사용명세서를 발견했어요. 320원밖에 안 되는 쓰레기봉투는 돈이 아까워 사지 않으면서 무려 60만원어치의 옷을 샀더라고요.”
이들이 일당 2만원을 받으면서 하루 6시간씩 한 아르바이트 체험 가운데는 ‘나쁜 것’만 있지는 않았다.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일했던 최정훈씨(21·경기공업대 컴퓨터응용제어학과 1년)는 무의탁 노인을 돌보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다니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돈 한푼 받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돌아다니며 빨래와 청소, 세금 납부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원봉사자를 보면서 이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어요.”
또 동국대 정보통신학과 2년 황인용씨(21)는 쓰레기 악취가 진동하고 먼지 등이 날아다니는 서소문공원 지하의 자원재활용처리장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불평 없이 일하는 공무원을 보고 놀랐다.
황씨는 “처리장 사무실 천장에 설치된 환풍기에 휴지를 매달았는데 3일만에 새까맣게 변했다”면서 “평소 공무원은 시민 위에 군림하는 직업이란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한달여 동안 계속된 구청 아르바이트 현장 체험은 이들 4명의 대학생을 ‘예비 모범시민’으로 바꿔놓았다.
“앞으로 솔선수범해 법과 질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