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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네트워크]'상도' 작가 최인호와 CEO 지인들

입력 | 2002-02-21 14:09:00


작가 최인호씨(57)의 장편 ‘상도(商道)’가 최근 판매량 250만권을 넘어섰다. 쉬운 문체, 다채로운 인물, 극적인 전개, 휴머니즘 등이 크게 어필한 때문으로 보인다. 원작이 동명의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데 따른 영향도 적지 않다.

‘상도’는 조선시대 거상(巨商) 임상옥의 드라마틱한 삶을 그렸다. 사실 최씨의 주위에는 최고경영자(CEO) 등 기업인이 적지 않다. 크게 성공한 이도 있고, 그늘 속에 있거나, 곡절 끝에 재기한 이들도 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이같은 이들이 있었던 게 ‘상도’의 집필 동기 중 하나였음을 인정했다.

최정호씨

우선 그의 형 최정호씨가 기업인이다. 젊은 시절 산업은행에 수석 입사했으며, 대우가 동유럽을 공략할 당시 폴란드 센트룸대우 사장 등으로 일선에 섰다. 대우 해체 후 실의의 세월을 보냈으나 최근에는 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정호씨는 문필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아우의 등단 작품에 ‘견습 환자’라는 제목을 붙여줬다. ‘별들의 고향’이라는 작명에도 조언했다. 소설 ‘겨울 나그네’의 제목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 제목은 ‘겨울 나그네’가 영화 드라마 뮤지컬로 성공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최인호씨는 “형이 가끔 ‘솔직히 말해 내가 문학적으로는 너보다 한 수 위지 않느냐’고 우기곤 하는데 그 때마다 이런 제목들 이야기를 꺼내 난감해진다”고 말했다.

정준명씨

최인호씨가 형만큼 깊은 교분을 나누는 CEO로는 정준명 삼성 일본 본사 사장이 있다. 두 사람은 서울고 동기다. 최씨는 정 사장이 “필력이 훌륭했고, 독서광이었다”고 말한다. 정 사장은 책이 드물던 시절 최씨와 함께 보들레르 릴케 하이네 바이런 롱펠로 등의 시집을 나눠 읽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고했다.

정 사장은 이병철 이건희 삼성 회장 부자(父子)를 각각 비서팀장으로 보좌한 유일한 기업인이다. 그에게 두 전·현 회장의 공통점에 대해 물어봤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거듭 하는 것, 담당자의 대답이 명료하게 이해될 때까지 심도를 높여 물어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병철 전 회장은 특히 “신조류 신기술 신제품에 민감했던 분이었다”며 “이 같은 관심사를 충족하기 위해 일본 등지의 서점 전시장 학술회장을 찾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났다”고 회고했다. 비서실에서 정 사장이 자주했던 일들의 하나가 일본 전문서와 잡지 등의 내용을 육필로 요약하는 것이었다.

이수억씨

정 사장 만큼 최씨와 오래 알고 지내는 이로 아서앤더슨사의 이수억 대표가 있다. 최씨는 “신혼 시절 서울 서대문의 좁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총각이었던 이 친구가 찾아와 와이프와 나 사이에서(?) 며칠씩 자고 갔던 기억이 난다”며 “요즘도 부부 동반으로 만나 가족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이수억 대표 가족과의 교분은 오랜 것이다. 최인호씨 형제는 어릴 적부터 이수성 전 총리, 이수인 전 국회의원(작고), 이수윤씨, 이수억 대표 형제와 잘 알고 지냈다. 형들끼리 서울고 동창이었던 데다, 최씨 형제의 부친인 최태원 변호사와 이씨 형제의 부친인 이충영 변호사가 서로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윤윤수씨

최인호·이수억씨 부부와 함께 ‘이름 없는 모임’을 만들어 ‘기분이 오를 때마다’ 만나는 이로 윤윤수 휠라코리아 사장 부부가 있다. 윤씨는 최씨와 서울고 동기다. 윤씨는 91년 휠라코리아 사장이 된 후 2000년까지 139억원의 연봉을 받았으며 이 중 62억원을 세금으로 낸 이다. 월급쟁이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윤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자기 인생의 추진력을 ‘근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성은 참을성과도 통하는 말인데, 죽기살기로 돈을 벌려고 하기 보다는 일 자체를 즐기는 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윤종용씨

최씨와 장년기에 새롭게 교분을 쌓은 CEO로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의 소개로 만났다. 최씨는 윤 부회장의 ‘메모광 습관’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듣고 본 것, 생각 난 것을 수첩에 철두철미 메모한다는 것이다.

최씨는 “‘잃어버린 화면 1인치를 고객에게 되찾아준다’는 삼성전자 TV 광고의 유명한 카피는 윤 부회장의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윤 부회장이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문화적 관심이 커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 윤 부회장은 화가 반 고흐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

김우중씨

최씨를 가까이 해온 재계 인사 가운데는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있다. 최씨는 “대우의 오늘과는 별개로, 김 회장은 참 신들린 듯 일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 회장이 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데 물심양면 지원해준 기억이 난다”며 “김 회장이 몇달만 더 앞당겨 구조조정을 택했더라면…” 하고 말끝을 흐렸다.

최씨는 “조직의 최상층에 있던 김 회장은 ‘자유인 최인호’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나는 그의 열정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는 “김 회장이 먼 곳에서 ‘상도’를 잘 읽었다”는 말을 전해왔다”며 “그 밖의 근황은 들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