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열 두 달 중에서 2월처럼 흐지부지하게 지나가는 달은 없는 것 같다. 우선 길이부터 짧다. 월말이 가까워 온다 싶으면 벌써 28일이 되어 끝나버리곤 한다. 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수업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허망한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새 학년은 3월에 시작한다. 초중고교를 기준으로 볼 때 3월 초에 시작한 1학기는 7월 중순에 여름방학으로 끝난다. 2학기는 9월에 시작해 12월 말에 겨울방학을 하고 2월 초순에 다시 개학해 2월 중순에 끝난다.
그러다 보니 2월 한 달은 완전히 ‘자투리 달’이 되어 버린다. 금년의 경우에도 5일경에 개학했다가 16일경에 학기말 봄방학을 했다. 학기말 시험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마친 상태이고, 더 나아갈 진도가 없어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하루하루 때우기를 힘겨워했다.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한 ‘억지춘향’이다. 더욱이 금년에는 설 연휴까지 끼어서 더욱 엉망이 되어버렸다.
▼'어영부영' 2월 효과적 활용▼
대학생들도 몸을 비틀면서 보내기는 마찬가지다. 12월 중순에 시작한 겨울방학이 날씨가 화창하게 풀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휴식으로 생각하자니 10주 정도 되는 방학은 너무 길고, 정규학기처럼 활용하기에는 너무 짧다.
나는 이런 모든 낭비적인 요소가 ‘새 학년 시작’ 시점을 잘못 정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유럽 중국 등 거의 모든 나라는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고 다음해 5월에 끝난다. 이들 나라에서 1학기는 9∼12월이고 2학기는 1∼5월이며, 6월부터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9월 초까지 계속된다. 일본에서는 4월에 새 학년을 시작해 다음해 3월 말에 졸업식을 한다.
나는 우리도 새 학년을 9월에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첫째로 2월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9월에 입학식을 하면 1학기는 9∼12월이 되고, 1월경에 6주 정도의 겨울방학을 하면 2학기는 2∼6월이 될 것이다. 그러면 2월은 학기를 시작하는 첫 달이 되어 지금처럼 ‘버리는 달’이 되지 않는다. 6월 초 학년말 시험을 치르고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성적 처리할 여유도 생긴다.
두 번째 장점은 학기말 봄방학을 여름방학에 합해서 활용하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길어져서 좋다. 긴 방학이 주어지면 체계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게 되어 여러 가지 현장학습이 가능하다. 선진국의 많은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현장실습이나 해외연수를 통해 현장감을 갖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이런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장점은 국제화시대에 적합하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학생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려면 학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한 학기를 놀고 기다려야 한다. 해외 취업의 경우에도 그들의 학기에 맞추어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경이 없는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더욱 많이 생길 것이다.
네 번째 장점은 입학시험 시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년 추운 수능시험 날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다. 9월에 입학식을 하면 수능시험은 5월경에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마음놓고 실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입학시험에 관한 제반절차는 6, 7월에 여유 있게 마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갑자기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할 수는 없다. 매년 한 두 달씩 조절해 가면 몇 년 안에 무리 없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여름방학 늘어 현장학습 유리▼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의 겨울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처럼 겨울방학을 오래 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 유럽 일본이 약 2주간의 겨울휴가를 가진다. 중국의 남쪽지역에서는 2주 정도이고, 북쪽 추운 지방에서도 4주 정도의 겨울방학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초중고교는 6주 정도이고 대학교는 10주 정도이다. 예전에는 추위 때문에 긴 겨울방학을 가졌던 것 같다. 이제 혹독한 추위도 없어졌고, 난방시설도 좋아지고 있다. 겨울방학을 줄이고 여름방학을 늘려서 진정으로 체험학습의 기간이 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특히 여름방학이 길어지면 정규과목을 배우는 여름학기로 활용할 수 있다. 즉 1년을 3개 학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2월에 학교에 가서 어떤 공부를 했느냐고 물어보자. 대학에 다니는 자녀에게 오늘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고 물어보자. 젊은이들이 시간을 버리면 국가의 미래를 버리는 것과 같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산업 석좌교수·전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