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금의 지배 /니알 퍼거슨 지음 / 류후규 옮김 /김영사 599쪽 1만9000원
◇ 히틀러와 돈 / 볼프 슈바르츠벨러 지음 이미옥 옮김/참솔 323쪽 1만3000원
돈이 먼저냐 권력이 먼저냐. ‘닭과 달걀’ 논쟁처럼 결론내리기 힘든 문제일지 모른다. 금력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추적한 책 두 권이 최근 선을 보였다. 두 책이 다루는 권력의 층위는 ‘국가내 특정 정파의 권력’과 ‘세계질서내 특정 국가의 총체력’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두 권 모두 기존의 정설과 상식들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히틀러의 돈’은 실패한 미술가 지망생이 독일의 지배자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금력을 동원했는지 탐색한 책. 히틀러가 성장한 지역의 관공서 문서까지 꼼꼼히 뒤지는 정밀함으로 ‘1인기업 히틀러’의 성장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히틀러 청렴’의 신화를 깨뜨리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대학살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죄과를 짊어진 히틀러도 ‘돈 문제만큼은 깨끗했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그는 정치가로 변모하는 동안 당의 돈을 갈취하고 부유한 후견인의 돈을 뜯어냈다. 특히 은행원 출신 막스 아만은 히틀러와 기생-공생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의 배를 불렸다.
아만은 히틀러가 신문사와 출판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상황의 환차익을 이용해 아주 적은 액수로 빚을 갚게 해주고 대신 출판사의 경영을 맡게 된다. 독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사들인 히틀러의 저서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아만의 ‘에어그룹’은 면세혜택을 누렸다.
공금 유용, 차명 거래, 환차익, 세금 포탈, 불법대출, 기부금, 국가기밀의 누설…. 책에 묘사된 온갖 불법 탈법은 나치 억압정권의 전성기와 권력과 연루된 ‘게이트’가 수도 없이 터져나오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가라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책의 주제인 금력 문제 외에도, 흔히 접할 수 없는 히틀러의 유년기 면모 및 정부(情婦)들과의 관계까지 치밀하게 기술돼 있어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이에 비해 영국 옥스퍼드대의 퍼거슨 교수(금융사 전공)가 쓴 ‘현금의 지배’는 언뜻 ‘돈이야 말로 권력창출의 열쇠’라는 주제로 읽혀지기 쉽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저자의 논지는 주로 ‘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이야 말로 돈을 움직이는 열쇠’라는데 모아진다. 현대세계가 갖추고 있는 징세제도, 국가채무, 중앙은행 등 성공적 경제제도는 중세 이래 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발명 발전되었다는 것. 그는 근대 이래 서구권 국가의 성패가 이들 제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지했느냐에 좌우되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국제관계와 결부시켜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9·11 테러 이전에 쓰여진 이 책이 미국의 ‘확장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 이 점에서 퍼거슨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의 강력한 논적이라 할 만 하다. 케네디는 미국이 확장주의적 정책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파악했지만, 퍼거슨은 미국이 오히려 ‘불충분한 확장’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경제 자원은 세계적 규모의 책임을 지기에 충분한데도 미국은 세계를 더 안전한 장소로 만들 수 있는 자원의 지출을 꺼리고 있으며 불필요한 고립주의를 취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미국이 ‘불량국가’들의 도전을 분쇄하기 위해 힘을 행사해야 하며, 1945년 독일과 일본에서 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기반이 결핍된 국가들에 개입해 민주적 제반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은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도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