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재단 이수동(李守東) 전 상임이사가 재임 시절 이용호씨로부터 받은 돈은 이 전 이사의 말처럼 ‘돌려주려던 용돈’이 아니라 ‘청탁용 뇌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0년 3월 금융감독원이 이용호씨 계열사의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하자 이씨가 이 전 이사에게 5000만원을 주고 이를 무마시켜 줄 것을 청탁했다는 것이다.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아직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금감원이 검찰 고발 대상에서 이씨를 제외했으니 이씨의 청탁은 먹혀든 셈이고, 거기에 아태재단 이사의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태재단은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정황이 이렇듯 분명한데도 청와대와 민주당 측이 이를 ‘이수동 개인 문제’라고 강변하는 것은 듣기에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다. 어제 오전 청와대 관계자는 “이수동씨의 아태재단 이사로서의 활동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법인 아태재단과 연결시키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수동 전 이사가 마치 대통령과 관련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수동씨의 아태재단 이사로서의 활동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이용호씨가 아태재단 이사도 아닌 ‘개인 이수동’에게 거금을 싸들고 가 금감원에 힘 좀 써달라고 청탁한단 말인가. 이씨가 받은 돈이 아태재단으로 들어가고 않고를 떠나 재단 이사가 청탁 뇌물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 아태재단은 이번 비리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청와대 측 논리대로라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대통령 처조카나 불구속 입건된 전 민주당 후원회장, 다른 게이트로 줄줄이 옷을 벗은 대통령수석비서관 등도 모두 ‘개인 문제’가 된다. 다만 그들이 한결같이 대통령 측근이거나 현 정권의 실세라는 공통점을 지닐 뿐이다. 이 기막힌 공통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