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휴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던가.
21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아이스센터에서 열린 제19회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피겨 여자 싱글의 최후 승자를 가리는 이날 강력한 우승후보이던 세계선수권 4회 우승, 전미선수권대회 6회 우승의 미셸 콴(미국)이 3회전 점프를 시도하는 순간 관중석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점프를 마치고 내려오던 콴이 착지에서 중심을 잃고 한손으로 빙판을 짚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
연기를 마친 콴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 기술과 연기 점수에서 기대 이하의 점수가 나오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어 마지막 연기자인 이리나 슬러츠카야(러시아). 쇼트프로그램에서 2위를 차지한 슬러츠카야는 라이벌 콴이 실수를 했기 때문에 한결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하지만 슬러츠카야 마저 점프 착지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금메달을 다투던 두 선수가 모두 프리스케이팅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이 바람에 금메달은 17세의 신예 사라 휴즈(미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슬러츠카야가 4명의 심판으로부터 1위 점수를 받은 반면 휴즈는 5명의 심판으로부터 1위 점수를 받았다. 둘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합한 점수에서 3점으로 동점을 이뤘으나 프리스케이팅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휴즈의 승리.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감격했고 콴과 슬러츠카야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세살 때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한 휴즈는 13세 때인 98년 전미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주목받았던 유망주. 올해 전미선수권에서 3위로 턱걸이하며 대표팀에 뽑혔다. 이번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4위를 했으나 프리스케이팅에서 3회전 연속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데다 1, 2, 3위인 콴과 슬러츠카야, 사샤 코언(미국)이 줄줄이 실수하는 바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메달에 머무른 콴은 98나가노대회에서 같은 팀의 타라 리핀스키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친 뒤 이번 대회에서도 후배 사라 휴즈에게 금메달을 빼앗겨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는 선수로 남게 됐다.
솔트레이크시티〓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슬러츠카야도 金 줘야" 러, 판정 항의서 제출
한편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가 끝난 뒤 러시아피겨연맹의 발렌틴 피셰예프 회장이 국제빙상연맹(ISU)에 긴급항의서를 제출하고 두 번째 금메달을 달라고 요청해 또다시 파문이 예고되고 있다.
피셰예프 회장은 이 서한에서 “첫째, 쇼트프로그램에서 이리나 슬러츠카야가 최고의 기량을 보였음에도 2위에 그쳤고 둘째,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표현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수를 받아 금메달을 놓쳤다. 따라서 슬러츠카야에게 두 번째 금메달을 수여할 것을 고려해달라”고 밝혔다. 이는 피겨스케이팅 페어부문에서 캐나다 팀에 두 번째 금메달이 수여된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셸 콴의 실수로 금메달이 유력시되던 슬러츠카야도 경기가 끝난 뒤 “예술점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5.6점이 나온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슬러츠카야는 이날 예술점수에서 9명의 심판 중 2명으로부터 5.6점을 받는 등 예상 밖의 점수를 받아 은메달에 그쳤다.
솔트레이크시티〓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