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 거인’ 최홍만이 21일 동아대학교 하단캠퍼스 체육관에서 밧줄을 오르며 상체 강화 훈련을 하고 있다.
흔히 키가 큰 사람을 일컬어 “남보다 머리 하나 더 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래판의 ‘거인’ 최홍만(21·동아대)의 ‘덩치’를 표현하는데는 ‘머리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키 2m18, 몸무게 160kg. 보통 키의 사람은 그의 어깨에 밖에 오지 않는다.
그는 어디를 가든 눈에 띈다. 게다가 밝은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까지. 언뜻 보면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오는 거인 악당 ‘조스’를 연상시키지만, 최홍만이 지어보이는 순박한 웃음을 보는 순간 그에게서 느끼는 이미지는 정반대가 된다. 그의 표정에서는 강하고 딱딱하다기보다는 부드럽고 활달한 젊은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를 염색한 것은 단지 “튀고 싶어서”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계속 염색을 해주어야 하지만 귀찮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신세대’다. 때문에 자신에게 붙여진 ‘테크노 거인’이라는 별명에도 꽤 만족하고 있다. 신세대다운 느낌이 오기 때문이라는데 실제로 테크노 춤 실력도 수준급이다.
최홍만은 민속 씨름의 ‘골리앗’ 김영현(2m17·LG투자증권)보다 1cm가 더 크다. 지난 1년간 2cm가 더 크는 바람에 올해들어 국내 최장신 씨름 선수가 됐다. 키만 큰 것이 아니다. 씨름 실력도 지난 한해동안 ‘쑥쑥’ 자랐다. 최홍만은 올해 설날장사 씨름대회 8강전에서 김영현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준결승에서 신봉민(현대중공업)에 무릎을 꿇었지만 프로 씨름의 정상급 스타들과 당당히 겨뤄 4강까지 진출해 씨름 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사실 최홍만이라는 이름이 씨름계에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학 2학년이던 지난해 6관왕에 올랐다. 이제 아마 씨름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다.그러나 최홍만은 재작년까지만해도 전국 대회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불과 1년만에 프로팀의 스카우트 대상 제1호가 된 것이다.
최홍만이 늦게 빛을 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홍만의 씨름 경력은 이제 만 5년밖에 안된다. 부산 경원고 1학년때부터 씨름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 성적은 8강 진출이 최고. 남들보다 늦게 씨름을 시작한데다 고교 시절에는 ‘키가 크느라’ 살이 붙지 않아 씨름을 할만한 몸이 아니었다. 중 3때 키가 1m87이었는데 고교 3년동안 40cm가까이 자랐으니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키가 쑥쑥 컸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몸매가 제 모습을 갖추고 힘이 붙었다. 씨름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기 시작한 것도 대학 입학 이후.
최홍만은 우연히 씨름과 인연을 맺었다. 고향은 제주도 한림읍. 한림중 3학년때 제주도로 합동 전지 훈련을 온 부산 경원고와 동아대의 씨름부를 만나게 됐다. 당시 최홍만의 신장과 큰 손발(최홍만의 신발 크기는 370mm)을 눈여겨본 경원고 조태호 감독과 동아대 송미현 감독이 그에게 씨름을 권유했다. 송감독은 “최홍만이 조금 더 자랄줄은 알았지만 그 때만해도 이만한 ‘거한’이 될 줄은 몰랐다”고 회상했다.
최홍만을 처음 발굴한 만큼 송미현 감독이 최홍만에 쏟는 애정은 남다르다. 고교시절 최홍만이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자 주변에서 “키만 컸지 힘을 못쓴다”는 눈총이 있었지만 송감독은 소신을 가지고 학칙을 바꾸면서까지 최홍만을 스카우트했다.
동아대는 원래 “전국 대회 4강에 오른 선수만을 체육 특기자로 입학시킨다”는 학칙이 있었지만 송감독의 건의로 “체격 조건이 좋아 가능성이 있는 선수”까지 체육 특기자로 입학할 수 있게 한 것.
대학에 와서는 체력 훈련에 주력했다. 마른 몸을 키우고 근육을 붙이는 데 힘썼다. 여기에 들배지기와 잡치기 기술을 연마해 주특기로 삼았다. 비슷한 키의 김영현이 신장을 이용한 밀어치기를 주무기로 삼아 싱겁다는 말을 듣는데 반해 최홍만은 들배지기로 승부를 거는 일이 많다.그만큼 키는 크지만 최홍만의 씨름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일단 힘이 붙자 아마 최강자로 올라서는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아마 씨름을 평정한 최홍만은 올해 중반쯤 프로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송미현 감독은 “최홍만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해주고 기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팀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최홍만 자신은 거기에 희망 한가지를 덧붙였다. “뒷날 시대를 풍미한 장사로 남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최홍만은 이를 위해 “프로 진출과 동시에 정상을 밟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았다. 시합이 없는 요즘도 최홍만이 매일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바로 ‘프로 진출 이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산〓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