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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알면 이긴다(7)]말기 환자 '평온한 임종' 보장돼야

입력 | 2002-02-24 17:14:00


“차라리 날 죽여주오.”

수많은 암(癌) 환자가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숨지지만 국내 의학계에서는 이런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의 고통에 대해 최근에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의사들은 생존기간의 연장에 주로 신경을 쓴 반면 환자의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경시한 면이 없지 않다.

이제 의학계에서도 말기 암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진통제를 처방하고 호스피스 등을 통해 환자의 편안한 임종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정설(定說)이 됐지만 아쉽게도 국내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환자가 통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못받고 있으며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으니 다른 환자들을 위해 퇴원해 달라”고만 종용한다. 매년 4만여명의 말기암 환자가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오기를 되풀이하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리다 숨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말기 암 환자 가족은 이런 현실 속에서 환자를 조금이라도 편안히 보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

▽말기암의 치료 원칙과 현실〓말기 암 환자가 호소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통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6년 ‘암 고통 완화 보고서’를 통해 단계별로 마약성 진통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암 환자에게 용량의 제한을 받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근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되면서 오히려 암 환자의 일일 투여용량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보험수가 삭감 등의 행정처분을 하는 등 암통증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에 오히려 제동을 걸고 있다. 또 기존의 주사제에 비해 훨씬 빨리 진통 효과가 나타나는 경구용(經口用) 모르핀도 수입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사는 “정부가 죽음을 앞둔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환자들과 일부 의사들 역시 진통제의 부작용과 중독을 우려해 마약성 진통제의 복용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잘못된 관행의 하나이다. 환자는 전문의와 이에 대해 적극 상의하는 게 좋다.

▽호스피스〓말기 암 환자에게는 매일 한차례 병상에 누운 채 목욕시키는 침상목욕이 삶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심장마사지나 수혈, 고용량 영양제 투여보다 의미있다.

이처럼 말기 암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자신의 품위와 인격을 갖고 덜 고통스럽게 삶을 정리하도록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종교인 등이 힘을 함쳐 돕는 것이 호스피스. 팀이 가정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에서 호스피스 치료에 대한 별도 보험 수가를 인정하지 않아 환자와 가족들의 요구는 많은 데 비해 호스피스 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호스피스 완화 의료학회(02-3779-1672, http://hospicecare.co.kr)나 인근 호스피스 기관에 수시로 연락해 서비스가 언제 가능한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다.

▽가족의 역할〓말기 암으로 진단받으면 기존의 어떤 치료법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며 평균 2∼4개월밖에 못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환자와 가족도 초기에는 의료진이나 세상,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와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때 가족 간의 대화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좋으며 다음엔 환자가 삶을 마감하는 것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

환자에게 실상을 숨기는 것보다는 가급적 알리는 것이 좋다. 갑자기 증세가 악화되면 유언도 못 남길 수 있다. 환자가 충격을 받을까 걱정되면 ‘혹이 있다’는 식으로 암시를 하고 환자가 ‘무엇이냐’고 따지면 넌지시 가르쳐 주도록 한다. 환자의 가족은 친척이나 친구에게 알려서 문병을 오도록 돕고 환자에게 좋은 추억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특히 가족의 중대사에 환자를 빠뜨리지 않도록 한다. 환자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지 말고 곁에서 자주 손을 잡는다. 환자가 원한다면 장례 절차와 의식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괜찮다.

▽획기적 치료법은 없다〓환자가 원한다면 민간요법을 받게 하거나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는 것도 괜찮다. 사실 말기암 환자의 90% 이상이 민간요법에 매달리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획기적 치료제라면 세계적으로 상품화해서 수십조원을 벌 수 있는데 국내에서 은밀히 유통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일부 식품은 간기능 저하, 백혈구 감소 등의 심각한 부작용 탓에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키고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주치의에게 상의해서 복용케 한다. 말기 암 환자는 생식 녹즙 등에 매달리기보다는 오히려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금식기도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절대 피한다.

(도움말〓서울대의대 내과 김태유 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암 Q&A

Q:암 환자는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데….

A:고기를 먹으면 암이 퍼진다는 얘기를 듣고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환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다. 특히 수술을 받은 사람은 수술 부위가 잘 아물려면 단백질이 필요한데 단백질의 주공급원은 고기이다. 항암 주사를 맞고 세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항체 역시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말기 암 환자는 음식을 고루 먹어야 통증이 줄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 키워드

완화의학(PalliativeMedicine)

말기암 등 불치병 환자가 덜 고통스럽게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서양의학이 한때 불치병 환자의 치료(Cure) 여부에만 신경쓰고 환자의 고통을 외면한 것을 반성해서 생긴 것으로 ‘보살핌(Care)의 의학’으로도 불린다.

호스피스는 완화의학의 대표적 방법이고 치료 목적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