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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환의 줄기세포 이야기]왕성한 복원력의 비밀

입력 | 2002-02-24 17:15:00


‘러브스토리’를 비롯해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죽어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미인병’이라고까지 하는 이 백혈병은 흰색인 백혈구들이 무제한으로 증식하여 골수와 혈액이 거의 하얗게 된다고 하여 병명이 붙었다. 이 병을 치료할 때에는 항암제를 투여하거나 방사선을 쪼여 골수와 혈액에 있던 백혈병 세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섬멸작전이 불가피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골수의 세포들을 파괴하고 나면 환자는 빈혈에다 혈소판 부족으로 출혈이 일어나고 백혈구를 만들지 못해, 대기 중에 떠도는 미생물에 대해서도 전혀 저항을 못하게 된다.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골수를 재건하기 위한 줄기세포들의 이식, 이른바 골수이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식 받는 골수의 양은 기증하는 사람의 약 20% 정도에 불과한 데다, 많은 경우 줄기세포를 이식한 후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여 사멸, 소실되므로 얼마나 오래갈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최초로 주어진 것은 바로 두달 전이다. 1960년대부터 골수이식을 시작했던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존 스토렉 박사를 비롯한 골수이식팀에 의해서였다.

즉 연구진은 20∼30년 전 당시 골수이식치료를 받았던 환자 33명을 추적하여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그토록 오래 전에 골수의 줄기세포를 이식 받았던 환자들이 혈액 및 면역반응이 거의 모든 면에서 정상에 가깝게 회복된 상태로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성체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이처럼 놀라운 복원력의 배후에는 ‘비대칭 세포분열’이라는 부조화의 미학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한 개의 줄기세포가 분열해서 두 개의 세포가 나올 때 대부분 분화된 세포가 나오지만 이따금씩 전혀 색다른 세포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자신과 꼭 닮은 또 하나의 줄기세포인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 세포분열에 의한 자가재생산을 통해 몇 안 되는 이식된 줄기세포에서 당장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혈액 및 백혈구로 분화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다 써버려 고갈되지 않도록,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자기와 똑같은 줄기세포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예수가 사순절에 군중에게 떡을 나누어 줄 때 아무리 떼어줘도 조금도 줄지 않아 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고 하는 신화와 같은 일이 성체줄기세포의 비대칭의 미학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