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들려졌다는 노래 ‘예스터데이’를 부른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가 미국에 왔을 때 그들을 보려고 공항에 구름처럼 몰려든 미국 청소년들은 울면서 “오빠, 오빠!”하고 부르짖었다. 어떤 이는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급기야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공항 담을 부순 뒤 ‘비틀스’에게 뛰어갔다.
내가 70년대 말 대학에 다니면서 방송을 할 때 우연히 서울시내 중심가 L호텔에 들렀다가 당시 내한 공연을 온 미국 인기가수 ‘레이프 가렛’이 그 호텔에 묵는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호텔 앞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우리 청소년들은 내가 그를 만나고 나온 것으로 착각해 내게 몰려드는 바람에 근처 교통이 마비가 돼 경찰차 신세를 지고 빠져 나온 일도 있다.
10여년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내한 공연을 했을 때 공연장에서 그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앞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사고가 나 희생된 청소년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 부모들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인기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려고(정확하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려고) 그야말로 피끓는 청소년들이 방송국 문 앞에서 생방송 몇 시간 전부터 장사진을 친다. 춥거나 덥거나 세찬 비바람은 그들에겐 아무 문제가 아니다. 열혈 팬들은 방송국 담장이나 화장실 벽까지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강타 짱’ ‘god 열나 조아’ ‘계상 오빠 마누라 다녀감…’.
스타에게 사랑만 주는 게 아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방하는 낙서들도 가득하다. ‘캡재수’ ‘못생기면 다냐’ 정도는 그래도 약과다. 일면식도 없는 스타의 부모에까지 욕을 해대고 있다.
공개방송이 시작된 공개홀 풍경은 가관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등장하면 본인도 시끄러운지 귀를 두 손으로 막고 울면서 소리치다가 그 가수 무대가 끝나면 수백명의 팬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뜬다. 밖으로 나가 다음 행선지로 가는 가수를 보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다음 출연 가수는 객석 한 부분이 뻥 뚫린 채 어수선해진 객석을 보며 노래를 할 수밖에 없다. 시종일관 고성만 질러대니 사회를 보는 내 목소리가 내 귀에조차 들리지 않고 출연한 가수와 인터뷰할 생각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소리 지르는 여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공연장 왔으면 공연장 질서를 지켜야지, 왜 소리만 지르니?” “히! 소리 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져요.”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다른 스타 흠집내기 내지는 비방으로 이어진다. 가장 흔한 예로 인터넷 안티사이트가 그렇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라이벌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인양 올리는 글들도 많다. “졸라 재수 없는 게 잘난 척 하는 꼬라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흔히 보는 말투다. 얼굴이 안 보이는 데다 익명이라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은 언젠가 후회할 일이다.
그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합리적인 비판정신과 진지한 질서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지울 수 없다.
임백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