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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열풍의 허와실]③영어 마스터 비법은 없나

입력 | 2002-02-25 18:31:00


《“해외 어학연수만 갔다 오면 금새 영어가 될 줄 알았어요. 영어가 생각처럼 안 돼 좌절감만 느끼고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다 시간만 허비한 것 같아요.” 지난해 캐나다에서 1년 동안 영어 연수를 하고 돌아온 K대생 최모씨(21)은 주위 사람들이 “영어가 수준급이 됐겠네”하며 관심을 보일 때마다 주눅이 든다. 실제로 그의 영어 실력은 연수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최씨처럼 영어를 배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에 나가도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영어에 대한 열정만으로 국내에서 영어 공부에 성공한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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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회사인 KTF 직원인 박영준씨(32). 그는 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한 기념으로 EBS와 영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영어대회에서 수많은 해외 거주 경험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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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인 박씨는 대학 시절 한글 자막 없이 원어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영어 공부에 몰두하게 됐다. 박씨는 좋아하는 영화를 녹음한 뒤 이어폰을 귀에 끼고 다니며 영어 대사를 귀가 아프도록 듣고 외웠다. 대학 4년 동안 박씨가 대사 전체를 외운 영화는 10여편이나 된다. 무료 인터넷폰이 등장한 뒤에는 수시로 외국인들과 접속해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씨는 “영어를 들으면서 한국말과는 다른 리듬이나 발음법 등을 즐겼다”며 “영어를 공부한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벌써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윤현수군(14·서울 서운중)은 꾸준한 듣기 연습을 통해 영어 공부에 성공한 케이스. 윤군이 영어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영어 동화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의미를 몰랐지만 재미를 붙인 뒤에는 놀거나,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녹음기를 틀어 놓을 정도였다.

듣기를 통해 점차 영어에 친숙해진 윤군은 4학년 때부터는 미국 AP뉴스를 인터넷에서 녹음한 뒤 옮겨 적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때 전국 영어경시대회에서 우승한 윤군은 외국인과 대화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다.

경원대생 이선욱씨(26)는 문장을 큰 소리로 따라 읽는, 말하기 위주의 훈련으로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중고교 때 영어 과목을 싫어했던 이씨는 대학생이 되고서도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다. 남들처럼 영어회화 학원도 다녀봤지만 기초가 없어 효과를 보지 못했다.

99년 군에서 제대한 뒤 한 영어학원 강사가 권하는대로 ‘문장 따라 읽으며 외우기’ 연습을 서너달 한 뒤부터 조금씩 자신이 생겼다. 그는 “틈만 나면 빈 강의실에 앉아 큰 소리로 영어를 읽는 연습을 했다”며 “아직도 깊이 있는 주제는 어렵지만 웬만한 대화는 영어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영어 공부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창 공부할 때는 한국말을 듣는 시간보다 영어를 듣는 시간이 더 많아 하루 10시간씩 영어를 소리내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 영어교육사이트 ‘네오퀘스트(www.neoqst.com)’를 운영하는 동시통역사 최완규씨는 “영어를 지겨워하면 절대로 영어를 잘 할 수 없다”며 “영화든 영어소설이든 싫증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가장 훌륭한 학습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신문 잡지 등에 나오는 ‘최단기간에 영어 정복’ 등의 영어 학습 관련 광고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이런 학습법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달만에, 늦어도 6개월 내에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온다고 선전하는 것은 영어 학습자들의 절박한 심리를 노린 ‘과장광고’라는 것.

고재경(高在經·영문학) 배화여대 교수는 “다양한 영어공부법은 있어도 ‘비법’은 없다”며 “결국 학습자가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교재를 선택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학습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또 언어 습득에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어 조기에 영어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결정적 시기 가설’도 논란이 있다.

이경우(李京雨·유아교육) 이화여대 교수는 “아이들은 언어 습득 장치가 발달돼 외국어를 스폰지처럼 흡수한다”며 “올바르고 신중한 학습법을 따른다면 당연히 조기영어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에 발표된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앙겔라 프리데리치 박사의 논문은 인간의 뇌가 외국어나 모국어를 처리할 때 똑같은 패턴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결정적 시기 가설에 따라 모국어와 외국어는 뇌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여겨져왔다.

미국 맥길대 프레드 기니시 교수가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어른이 돼서 이민한 사람의 3분의 1은 어려서 이민한 사람이나 미국 본토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