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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칼럼]맨체스터의 중심, 최고의 감독 알랙스 퍼거슨

입력 | 2002-02-26 14:06:00


90년대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놀라울 만한 성적 뒤에는 수많은 선수들의 노력이 있었다. 잉글랜드 주장 출신이자 창조적인 미드필더였던 브라이언 롭슨 (Brian Robson), 90년대 초반 환상의 투 톱을 이루었던 브라이언 맥클레어 (Brian McClair - 스코틀랜드 대표 출신)와 마크 휴즈 (Mark Huges - 웨일즈 대표 출신), 잉글랜드 최고의 맨마킹 스토퍼로 평가 받았지만 불행히도 대표팀에는 한 번도 뽑힌 경험이 없던 스티브 브루스 (Steve Bruce), 맨유로 이적한 뒤 제 2 의 축구인생을 활짝 편 카리스마적인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 프랑스 대표 출신), 덴마크 대표 출신으로서 철옹성의 방어력을 자랑했던 피터 슈마이켈 (Peter Schemeichel), 눈부신 스피드와 돌파력을 선보였던 켄첼스키스 (Kenchelskis - 러시아 대표 출신),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맨유의 미들을 지키고 있는 현 맨유의 주장이자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드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는 로이 킨 (Roy Keane - 아일랜드 대표 출신), 단순한 듯 보이지만 엄청난 스피드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라이언 긱스 (Ryan Giggs), 그리고 90년대 중, 후반부터 맨유를 이끌고 있는 유스팀 출신의 영 제너레이션스와 올 시즌 영입한 베론 (Juan Sebastian Veron), 반 니스텔루이 (Ruud Van Nistelrooy)까지…

정말 주옥 같은 선수들이 지난 10년 동안 팀을 오가면서 오늘날의 아성을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맨유의 화려한 성적 뒤에 지난 15년간 꾸준히 한 자리를 지키며 이들을 조련해 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장 알랙스 퍼거슨 경 (Sir Alex Ferguson)이다. 86년 부임 이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꿋꿋이, 그리고 치밀하게 맨유의 전성기를 부활시킨 퍼거슨 경. 필자의 세 번째 컬럼은 이 위대한 승리자의 업적에 대해 많은 축구 팬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게 된다.

노동자 출신에서 기사 작위까지

퍼거슨 경은 50 - 60년대 맨유의 화려한 전성기를 이끌었던 맷 버스비 경 (Sir Matt Busby)의 업적을 계승한 영웅이며, 1993년 맨유를 리그 정상으로 이끌면서 20년 간의 우승 갈증을 풀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1941년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Glasgow)에서, 청교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퍼거슨 경은 유년 시절 클라이드 (Clyde) 선박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임금을 둘러싼 비공식적인 파업을 주도할 정도로 선천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갈망하는 것은 언제나 축구였다. 퍼거슨 경은 16년 간 비교적 무난한 선수 생활을 했다. 비록 튀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항상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였다. 16년 간 그는 스코틀랜드 클럽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는데 그가 활동했던 클럽은 퀸스 파크 (Queen's Park), 세인트 존스턴 (St Johnston), 던퍼민 (Dunfermine), 폴커크 (Falkirk), 아일 유나이티드 (Ayr United), 그리고 스코틀랜드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레인져스 (Rangers)였다. 하지만 퍼거슨 경의 진정한 가치는 감독을 맡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5년 세인트 미렌 (St. Mirren)에서 감독 데뷔를 한 퍼거슨 경은 3년 후 에버딘 (Aberdeen)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보잘 것 없는 팀을 이끌고 퍼거슨 경은 당시 레인져스와 셀틱 (Celtic)의 Old Firm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이 두 팀을 Old Firm이라 부른다. 이 두 팀은 더비 관계인데 이것은 Old Firm Derby라고 부른다) 독식을 깨버리는 업적을 달성한다. 6년 간의 에버딘 감독 기간 중 그는 3번의 리그 타이틀과 4개의 스코틀랜드 FA컵, 한 번의 유러피안 컵 위너스 컵을 이 황량한 도시에 선사했다. 그리고 1986년, 퍼거슨 경은 마침내 맨유의 옛 영광을 되찾아줄 구원자로 기대 받으며 론 앗킨슨 (Ron Atkins) 감독의 뒤를 이어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1980년대 잉글랜드 리그는 리버풀, 아스날의 양강 체제였다. 맨유는 당시 상당히 불안정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리그 중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다. 86년 11월 6일부로 맨유 감독직을 수락한 퍼거슨 감독은 옛 명성의 그늘에서 허덕이고 있던 팀을 정상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그리 밝지 않았다. 86- 87 시즌 13게임을 치룬 상황에서 맨유는 단지 3경기만을 승리했다. 또 맨유는 그 당시 리그 컵인 리틀우드 컵 (Littlewoods Cup)에서 사우스햄프턴 (Southampton)에게 4대 1로 대패하면서 최악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부임 후 일단 꼴찌에서 4위를 달리고 있던 팀을 강등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첫번째 임무로 생각하고 팀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리버풀의 독식을 막지 못하던 우울한 팀을 서서히 추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해 특별한 선수 영입 없이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리그 11위까지 끌어 올리며 강등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86 - 87 시즌 강등의 위기를 모면한 퍼거슨 감독은 본격적으로 팀을 '우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클럽'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맨유는 팬들이 보기 좋아하는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었지만, 리그에서 요구하는 격렬한 몸싸움 축구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팀이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이 맡은 두 번째 시즌에서 맨유는 비브 앤더슨 (Viv Anderson), 스티브 브루스, 브라이언 맥클레어 등을 영입하며 준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다음 두 시즌에서는 각각 11위와 13위를 차지하며 아직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팬들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왔고 마침내 퍼거슨 감독의 경질을 원하는 소리가 거세게 나오기 시작했다. 후에 퍼거슨 감독은 이 시기를 감독 생활 중 가장 힘들고 절박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리그에서 맨유의 부진은 계속 되었지만 적어도 컵 대회에서는 좋은 플레이를 보이며 팬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다. 1990년 5월 17일, 맨유는 5년 만에 FA컵에서 우승하며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1년, 컵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유러피안 컵 위너스 컵에서 바르셀로나를 2대 1로 꺾으며 우승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컵 대회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불만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리그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91 - 92 시즌, 맨유는 시즌 내내 선두를 유지하다가 막판에 리즈 (Leeds United)에게 추월 당하며 다시 한 번 준우승에 머무른다. 하지만 같은 시즌 맨유는 리그컵 우승과 유러피안 수퍼 컵 우승을 하며 어느 정도 위안을 얻는다.

퍼거슨 감독의 냉철한 전략과 꾸준한 노력은 92 - 93 시즌 마침내 빛을 발휘한다. 맨유는아스톤 빌라 (Aston Villa)와 놀위치 시티 (Norwich City)의 끈질긴 도전을 뿌리치고 26년 만에 처음으로 프레미어 리그 (92 - 93시즌부터 디비전 1이 프레미어 리그로 독립함)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퍼거슨 감독에 대한 구단의 변함없는 신뢰, 지원, 그리고 특유의 지도력으로 선수를 장악하고 좋은 선수들을 발탁, 영입한 그 모든 노력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그 해 '올해의 감독' 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고 그 다음 시즌 또다시 리그 우승을 하면서 2년 연속 '올해의 감독' 상을 거머쥔다. 맨유는 93 - 94시즌에 FA컵까지 우승하면서 잉글랜드에서 더블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을 이룩한 6번째 클럽이 된다. 또 퍼거슨 경은 감독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첫번째 감독이 된다. 그리고 그는 요한 크루이프 다음으로 두 개의 다른 나라 리그 팀에서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한 감독이 되기도 했다.

94 - 95시즌이 시작되면서 맨유는 어김없이 우승 1순위로 주목 받았다. 팀의 조직력은 날로 견고해지고 있었고 특급 공격수인 앤디 콜 (Andy Cole)을 뉴카슬 유나이티드 (Newcastle United)에서 700만 파운드로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상황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당시 맨유 핵심 맴버인 에릭 칸토나가 그 유명한 쿵푸 킥 (퇴장 당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욕을 한 팬에게 멋진 (?) 발차기를 한 유명한 사건) 사건으로 8개월 출전 정지를 당하면서 맨유의 상승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결국 맨유는 94 - 95시즌 우승을 놓치고 FA컵 결승에서 에버튼에게도 패하면서 5년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우승 트로피도 가져 오지 못한다.

95 - 96 시즌, 퍼거슨 감독은 출장 정지를 당한 칸토나와 지난 몇 시즌 동안 맨유의 핵심 멤버였던 마크 휴즈, 캔첼스키스, 폴 인스 (Paul Ince) 같은 선수들 없이 팀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결국 퍼거슨은 복귀한 칸토나와 맨유의 유스팀 출신 신예들을 이끌고 역사적인 더블을 이룩한다. 당시 맨유 베스트 11 중에 6 - 7명이 21살 이하인 유스팀에서 갓 올라온 젊은 선수들이었다.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는 선견지명, 어린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과감성, 그리고 이들을 단 한 시즌 만에 우승팀으로 조련한 퍼거슨 경의 감독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시즌이었다. '올해의 감독상'이 그에게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6 - 97시즌, 퍼거슨 경은 맨유 감독 부임 10주년을 맞이 한다. 맷 버스비 감독 이후로

가장 오랫동안 맨유 감독 자리를 지키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솔샤르 (Ole Gunnar Solskjaer), 욘센 (Ronny Johnsen)을 영입해 날로 성장하는 기존의 젊은 영 건들과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며 또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4강에 오르며 앞으로 유럽 컵에서의 전망을 밝게 했다. 퍼거슨 경에게 최고의 순간은 서서히 다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퍼거슨 감독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 낸다. 98 - 99 시즌, 맨유는 리그 우승, FA컵 우승, 그리고 결승에서 극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꺾으며 유러피안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전무후무한 트레블 (Treble)을 달성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시즌 후 퍼거슨 감독은 버킹검 궁에서 기사 작위 (Knighthood)를 받는 생애 최고의 영예를 얻는다. 영국 왕실에서도 잉글랜드 축구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도저히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트레블 달성 이후 퍼거슨 경은 주위 라이벌 팀들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99 - 00, 00 - 01 맨유를 연속 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 01 - 02 시즌, 맨유는 초반 수비 불안으로 부진한 출발을 했지만 서서히 재정비, 한 때 리그 8연승을 달리며 현재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라이벌 팀들의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지만 현실적으로 맨유의 우승이 가장 유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퍼거슨 경의 소원대로 자신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헴프던 파크 (Hampden Park)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안을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햄프던 파크에서 열린다.)

퍼거슨 경의 미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경은 끊임없이 승리를 원하는 감독이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하루 14시간 일하는 일 중독자로도 유명하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개성 강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존심 센 선수들을 확실히 장악하며, 치밀한 전술과 훈련으로 팀을 조련하고, 다른 팀 감독과의 미묘한 심리 플레이에도 능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따라서 퍼거슨 경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사임한다고 했을 때 맨유 관계자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많은 동요를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퍼거슨 감독의 사임으로 맨유의 오랜 아성이 마침내 무너질 수 있다고 예측했고, 재계약을 앞둔 일부 핵심 선수들도 새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일까. 퍼거슨 경은 사임을 번복하고 앞으로 몇 년간 감독 유임을 결정했다. 맨유 팬들과 관계자들은 쌍수를 들고 반겼고 무엇보다 맨유 핵심 멤버인 벡컴, 긱스, 킨 등은 공식적으로 퍼거슨 감독의 유임을 환영했다. 퍼거슨 감독의 유임 결정은 여러모로 맨유에게 의미가 있다. 일단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 맨유는 최고의 팀에 걸맞은 최고의 감독을 찾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처음 퍼거슨 경이 사임을 발표 했을 때 맨유 관계자는 클럽의 규모와 성적에 걸맞은 세계적인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카펠로, 히츠필드, 오닐, 리피, 심지어 현 잉글랜드 감독인 에릭손 감독에게까지 접촉을 했었지만 모두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이 맨유라는 거대한 클럽을 지휘하는 것이 분명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맨유는 단기간이지만 이런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 싶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퍼거슨 감독의 유임으로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맨유의 핵심 멤버들이 팀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항상 유럽 빅 클럽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맨유의 주전 선수들이 고스란히 재계약을 한다면 팀은 현 전력을 유지할 수 있고 조직력을 더욱 탄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퍼거슨 감독을 믿고 팀 잔류를 원하는 그 유명한 선수들의 행동에서 퍼거슨 감독이 받고 있는 신뢰와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벡컴, 스콜스, 긱스, 버트, 솔샤르 등은 이변이 없는 한 맨유와 재계약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맨유의 주장이자 미드필드의 중심인 킨이 재계약에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퍼거슨 감독과의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결국 그도 재계약을 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퍼거슨 경이 없는 맨유는 생각할 수 없듯이 킨 없는 맨유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퍼거슨 경. 필자는 퍼거슨 경을 아르헨티나의 비안치 감독과 함께 90년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성공에는 끝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이끄는 맨유의 영웅들은 새로운 승리를 위해 오늘도 축구화를 질끈 동여맬 것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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