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 래빗' 모임
19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강나영씨네.
강씨의 아들 우재와 동갑내기인 네 살배기 남녀어린이 다섯명이 엄마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날은 엄마들이 스스로 만든 놀이공부 모임인 ‘바니 래빗’의 수업이 있는 날.
노래 율동 담당 선생님인 은민(남)엄마 이영희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짝 반짝 작은별…” 노래를 시작하자 그때까지 눈을 멀뚱멀뚱 뜨고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은 곧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서서히 수업에 빠져들었다.
1년여전 하늘이(여) 엄마 김남리씨가 인터넷을 통해 “엄마들끼리 품앗이로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 없느냐”는 공개제안을 했다. 곧 압구정, 신사, 반포동 등 사는 동네가 가깝고 네 살배기 아이를 둔 여섯명의 30대 초반 주부들이 모였다. 김남리씨는 “시작되는 노래의 주제에 따라 엄마들이 각자 스토리텔링, 과학놀이, 숫자놀이, 미술, 활동놀이 등 담당한 과목별로 수업내용을 짜 온다”며 “노래의 주제는 회원 전용 홈페이지에 수업 1∼2주 전에 미리 올려놓는다”고 말했다.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만나는 ‘바니 래빗’의 수업은 매주 1회 1시간뿐. 그래도 여섯아이들 중에 ‘바니 래빗’ 외에 놀이방이나 유치원에 다니거나 학습지를 하는 아이들은 없다.
노래 율동이 끝나자 이야기담당 선생님인 부윤(여)엄마 이미정씨가 준비해온 영어책을 몇 권 꺼내 들었다. 그림책 속의 전화기, 쥐, 소 등을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영어로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영어 전문 강사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미술을 담당한 강나영씨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손가락을 내밀어보라고 했다. 강씨는 아이들의 왼손에는 빨간색 물감을, 오른손에는 파란색 물감을 짜주었다. 그리고 각자에게 나눠준 접시에 손으로 두 물감을 섞어 신문지에 원하는대로 찍어 보도록 했다. 변한 색깔에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데 한 아이가 “야! 퍼플(purple)이다”라고 외쳤다. 수업 도중에 엄마들이 자주 영어로 얘기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영어감각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뚜렷했다.
이어 손전등으로 만든 신호등 놀이, 종이에 별 등을 오려서 모양을 맞추는 숫자놀이, 카펫에 아이들을 태워 엄마들이 흔들어주는 놀이, 색종이를 찢어서 풍선에 비빈 뒤 붙이는 놀이 등이 계속됐다. 한 시간의 수업 동안 아이들은 별 지루한 기색이 없었다.
과학놀이 담당이며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혜빈(여)엄마 김현아씨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기보다는 같이 어울리고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을 오히려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모들도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영어, 과학지식, 생활예절 등을 배우는 것보다 함께 어울리는 법,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지켜야 할 규칙들을 은연 중에 배우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친구를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놀고 난 자리를 치울 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는 것이다.
숫자놀이를 가르치는 호정이(여) 엄마 이소정씨는 “시작한 지 1년이 됐는데 아직도 준비를 하려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아이템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며 “엄마들의 능력이 닿는 한 모임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