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차이무’의 연극 ‘행복한 가족’에는 ‘행복’과 ‘가족’이 없다. ‘외로운’ 노인의 ‘쓸쓸한’ 가족사를 희극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현대사회의 ‘가족 해체’와 ‘물질만능주의’를 코믹하게 고발하는데 있다.
노인 허학봉은 살아있다면 칠순을 맞는 아내의 제삿날이 돌아왔어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 교수와 유학을 떠난 아들 등 가족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들로부터 외면당한지 오래이기 때문.
노인은 제사를 위해 ‘우리가 남인가’라는 가족 대여업체로부터 ‘가짜 가족’을 빌린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가족들은 효자손과 운동기구를 선물하고 ‘god’의 ‘어머님께’,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열창한다.
하지만 노인과 가짜 가족의 인연은 여기서 멈춘다. 계약만료 시간인 자정이 되자 가짜 가족들은 “내년에도 이용해달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버린다. 자정에 시작하는 제사에 “절 한번만 해달라”는 노인의 부탁도 “다시 돈을 접수시키라”라며 매정하게 끊어버린다. 물질주의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결국 홀로 남은 노인은 “사진 속 당신은 오십 그대로인데 난 백발이 다 됐다”고 독백하며 아들 딸들을 대신해 절을 한다. 술잔을 기울이며 비탄에 젖는 노인 뒤로 흐르는 ‘비둘기집’ 연주곡은 행복하지 않은 노인 심경을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행복한 가족’은 툭하면 월남전 참전 무용담을 늘어놓는 노인의 대사가 극의 흐름을 끊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갈수록 황폐해져가는 가족의 현실을 흥미롭게 풍자해 여운을 남긴다.
‘행복한 가족’의 연출자 민복기씨는 “각종 서비스업이 생기는 요즘 가족 대여 업체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를 설정해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3월3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주말 오후 3시 6시. 서울 학전 블루소극장. 8000∼1만2000원. 02-762-081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