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표 있어요?'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의 수준은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철도노조와 발전산업노조의 불법파업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민과 대학생, 노동전문가들은 농성 과정에서 일부 노조 집행부가 보여준 비(非)민주성과 무질서, 폭력성에 대해 씁쓸해 했다. 디지털시대에 언제까지 ‘불법파업→시민불편→공권력 행사’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야 하느냐는 탄식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박사는 “노조원들의 투쟁구호를 유도하는 ‘선동자’는 있지만 노동운동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합리적인 주장을 펴는 ‘리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정부와 사용자 측도 각성해야 하겠지만 이래서는 선진형 노사관계가 자리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의 농성장으로 쓰인 서울대와 건국대 캠퍼스는 26일 이들이 버린 각종 오물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했다. 대학 입학에 앞서 이날 부푼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신입생들은 교정을 무단 점거한 노조원에게 주인 자리를 내준 채 교정과의 첫 만남을 어수선하게 시작했다.
파업이 시작된 25일 오전 4시경 건국대 대운동장 곳곳에는 노조원들이 마시고 버린 술병이 굴러다녔다. 서울대에서 농성 중인 발전노조원들은 지도부의 행동지침에 따라 비교적 질서를 유지했지만 술병 도시락용기 등 쓰레기가 캠퍼스 곳곳에 넘쳐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노상에서 용변을 보는 사례도 목격됐다.
특히 철도노조 집행부는 규찰대원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물리적으로 통제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손학래(孫鶴來) 철도청장은 “건국대에서 농성중인 2000여명의 근로자 중 상당수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소속 소장에게 자신들을 빼내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며 “하지만 200명 정도로 구성된 규찰대원들이 못 나가게 단속하면서 구타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아무리 노조의 결속력이 중요하더라도 근로자 개인의 의사결정과 신체 행동의 자유까지 통제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정부측에 정면 대응을 촉구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노조의 요구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합법적 논리적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소수 노조지도부의 전횡으로 불법파업이 감행돼 다수의 근로자를 범법자로 내모는 모순을 시정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선한승 연구위원은 “이번에 쟁점이 된 사안은 크게 보면 노동운동계의 현안이지만 개별 근로자로서는 삶의 조건과 일터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 소홀히 취급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