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때인 1959년 미8군 영내 행사인 ‘김 시스터스 쇼’의 MC로 데뷔한 그는 총소리 폭발음 등을 입으로 흉내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재현’,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는 또 트럼펫 트롬본 등 관악기 소리를 완벽하게 모사, 원맨쇼 분야에서 고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와 쌍벽을 이뤘다. “곽규석은 비위생적으로 손가락을 입에 넣고 병 따는 소리를 내는데, 나는 손 안 넣고 낸다”는 익살로 라이벌 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큰소리 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군 복무 중 부대를 빠져나와 공연을 다녔을 때, 그를 체포하러 온 헌병들이 무대의 출구를 막은 채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자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어울려 노는 척 하며 ‘포위망’을 빠져나간 일화도 유명하다.
현재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모든 코미디쇼와 가요 공연에서는 ‘쓰리보이가 MC를 보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60, 70년대 그는 인기 MC였다.
1940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 개성중,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선후배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70년대 후반 연예협회 10대 위원장을 지내고 15, 16대 이사로 재직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원로 연예인들을 남모르게 지원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1996년 12월에는 ‘선행예술인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전국연예예술인노동조합 석현 위원장(57)은 “상가(喪家)에 가면 꼭 만날 수 있는 사람,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지갑 속 돈의 반절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그는 말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