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귀재’ 빌 게이츠는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스무살 때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천재에다 세계제일의 부자, 여기에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기도록 노총각으로 남아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랬기에 그의 신부감을 두고 별별 얘기가 다 나돌았다. 절세미인인 영화배우가 등장하는가 하면 으리으리한 집안의 딸 이름도 나왔다. 그러나 막상 그가 택한 반려자는 미인도 유명인도 아니었다. 바로 부하직원인 멜린다 프렌치라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이 ‘의외의 선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 명의 머리는 하나보다 낫다.”
▷굳이 빌 게이츠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내커플은 편리한 점이 많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은 점이 그렇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 또한 그렇다. 매일 10시간 가까이 한 직장에서 생활하다 보면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 게 아닌가. 그런 마당에 공연히 따로 시간을 내 낯선 상대를 찾아나설 필요도 없을 터이다. ‘모든 사랑의 3분의 1은 직장에서 시작한다’는 미국 연방정부 보고서는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서도 사내커플에 대한 찬성이 60%가 넘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아예 사내결혼을 장려하는 회사도 있다. 애사심이 훨씬 커진다는 이유다.
▷그러나 장애물도 적지 않다. 사귄다고 소문나면 “일 안하고 연애만 하냐”는 비아냥은 약과고 온갖 억측과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리다 어느 한쪽이 제풀에 지쳐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래서 사내커플의 ‘몰래데이트’는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사내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하는가 하면 들키더라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기본이다. 오죽하면 ‘같이 퇴근하지 말라’ 등 ‘사내커플 10계명’까지 나왔을까.
▷이건 연애할 때 얘기고 결혼에 골인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한직으로 내몰리기 일쑤고 인원감축 때마다 뒤통수가 따갑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규모 인력감축을 할 때도 첫번째 대상이 사내부부를 포함한 가족사원들이었다. 여자 쪽은 숫제 ‘죄인취급’이다. 외환위기에 시달리던 1999년 농협 구조조정으로 사내부부 762쌍 가운데 752쌍이 사라졌는데 퇴직 부부사원 가운데 여자가 남자의 10배가 넘었다지 않는가. 같은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알리안츠제일생명보험 여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한다. 눈칫밥 먹던 사내부부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