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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햇볕' 밖에서도 샜다

입력 | 2002-02-27 18:29:00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대북 정책의 한미일 3국공조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고이즈미 총리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한 한반도 전문가(일본 방위청 제3연구실장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교관)는 역설적으로 풀이했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문제를 다루면서 좀 더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일본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놓고 한미간에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말을 아꼈지만 의사표시가 자유로운 전문가들은 대부분 햇볕정책에 회의적이다. 안의 퍼주기란 비판 못지 않게 밖에서도 ‘너무 헤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해온 것이 분명하다.

▼'무늬만 수박' 한-미-일 共助▼

실제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했고, 부시 행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내놓은 데 비해 한국정부는 당근과 당근, 그리고 또 당근만 주려한다고 했다. 1999년 5월 한미일 3국간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Trilateral Co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 구성후 정부는 햇볕정책의 3국 공조체제를 과시해 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상은 다르다. 겉으로는 공조라 했지만 속으로는 심각한 의견차이를 드러냈고 한국은 외톨이 격이다. 그런 지경인데도 햇볕만을 되뇌었으니 그동안 우리가 치른 외교비용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다. 대북정책은 외교문제 치고도 대단히 민감한, 국제적인 협력과 협조가 절실한 사안이란 점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막상 현장에서는 고립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평양까지 다녀오면서 김 대통령은 흥분했다. 임기중 역사적인 커다란 획(劃)을 그어보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겨울의 두꺼운 외투를 벗기는 것은 따뜻한 햇살뿐이라는 이솝우화를 인용해가면서 내세운 것이 햇볕정책이다. 그런데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 특히 북한이라는 폐쇄사회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햇볕이, 얼마나 오랫동안 필요한지를 생각지 않았다. 다른 말로 얼마나 퍼주기를 계속해야 할지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본 전문가(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교수)의 시각이다. 식량지원만을 볼 때 2000년 130만t(한국 60만, 일본 60만, 미국 10만t), 2001년엔 35만t(한국 10만, 미국 25만t)을 퍼주듯 했지만 오늘날 남북관계의 현실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다음 반응이 어떨까 눈치나 보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우리도 우리지만 미국과 일본의 생각은 어떻겠는가. 역사적 기록을 남기겠다는 김 대통령을 위한 비용을 그들이 흔쾌히 지불할 일은 없다. 실상이 이런데도 김 대통령은 그들의 지원을 당연히 기대한 것이 근본적인 패착이다. 햇볕정책은 안에서도 그랬지만 외교적으로도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마디로 안팎의 실패다. 미적분(微積分)의 고등 수식으로도 풀기 힘든 국제관계를 덧셈 뺄셈으로 덤벼든 격이니 이 외교적 무지는 누구의 탓인가.

햇볕정책이 궁지에 몰린 원인은 국제정치 기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를 제대로 읽지 못한 외교안보정책의 무기력에 있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남들은 정책의 시야를 넓히고 유연성을 높였다. 10년전만 해도 꺼내기 어려웠던 ‘일미 동맹’이란 말이 지금 일본사회에서는 별 저항없이 통용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끈질긴 공론화 노력의 소산이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 햇볕정책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세는 미국쪽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허나 우리는 ‘50년 혈맹’에만 집착했고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변화를 너무 몰랐다. 미국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변화를 간파했어야 했다. 남북문제 해결에 어차피 미국과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현실 아닌가. 1871년 독일통일을 앞두고 국제협력이 절실했던 비스마르크 총리는 국내에선 보수철권을 휘두르면서도 밖으로는 대담하게 프랑스의 주류 개혁파를 지지했다. 외교는 그런 것 아닌가.

▼세계전략 변화에 둔감▼

또 현정권은 햇볕정책을 한반도로 너무 국지화(localize)시켰다. 대북정책을 지역화(regionalize)하고, 세계화(globalize)하는 정책의 외연(外延) 노력이 있었다면 국제적으로 더욱 설득과 지지를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몸을 던져 전쟁을 억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전략차원의 논리로 구성한다면 분명 만만치 않은 외교정책적 무기가 될 수 있다. 햇볕정책은 북한정권의 중장기 전망을 포함해 안팎의 담장을 새로 뜯어 고쳐야 한다. 지금 같아서는 한발짝도 더 내딛기가 어렵다. 누구보다 김 대통령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최규철 논설실장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