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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윤용만/기초학문 없인 국가成長 없다

입력 | 2002-02-28 18:18:00


1980년대 초 미국 TV방송의 뉴스 시간에는 거의 매일 파업 관련 뉴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미국 학계에서는 일본경제의 고도 성장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기업의 도제제도, 종신 고용제, 일본 사회의 사무라이정신 등이 꼽혔으며 이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어떠한가. 고질적인 파업에 시달리던 미국은 다시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반면 일본은 90년대 이후 지속적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포함한 미국의 구조조정과 경제개혁, 강력한 경제정책의 성공 등 많은 요인을 열거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중 가장 두드러진 원인으로 기초학문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들 수 있다.

▼전문대학원 도입 서둘러야▼

현재 미국에서 단일 학과의 교수 수가 평균적으로 가장 많은 학과로 수학과를 꼽을 수 있다. 필자가 수학한 서부의 워싱턴대의 경우도 80여명의 교수가 재직 중이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기초과학이 탄탄한 데 비해 우리나라의 일부 사립대는 대학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수학과를 폐지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으니 한마디로 아연실색할 정도다.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수학을 도외시하고 학문발전을 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또한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에서 현재 학부제가 실용학문 위주로 개편되고 있어 앞으로 경쟁력에서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인문계의 경우 소위 잘 나가는 법학 경영학 등이, 자연계의 경우 의학 계열이나 IT관련 학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본학문의 바탕 없이 응용학문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서울대를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의 석학들에게 자문하여 얻은 결론의 하나도 문리(liberal arts)교육, 기초교육을 강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최근 세계 여러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에게 광범위한 교양과 일반 교육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다. 기초학문은 전반적인 지식과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지적 유연성과 평생학습 자세를 길러주기 때문에 지식기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같이 기초학문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꾀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재원에 여유가 없는 우리 형편을 감안할 때 기초학문을 육성하기 위한 차선책은 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경영대학원, 법과대학원, 의과대학원 등 전문·특수대학원의 도입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교육인적자원부는 기존 의과대학과 병행해서 전문 의과대학원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그러나 기초학문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원화된 제도보다는 단일화된 의과대학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전문대학원이 설치될 경우 의과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생물 화학 등의 학과를, 법학·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사회 인문과학의 과목을 학부에서 주로 수강하여야 하기 때문에 기초학문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인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경우도 학부에 경영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펜실베이니아대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없다. 다른 일류 경영대학원의 대부분도 학부과정이 없다.

▼국공립대 중심 활성화를▼

그리고 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학부에서 공부 안하고 배겨날 수가 없다. 일전 서울대에 대한 조사에서 나타난 것 같이 서울대생의 공부시간이 일일 평균 2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기초학문을 육성하는 또 다른 방법은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기초학문을 특성화 활성화하는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공공재적 기능을 십분 활용해 사립대학이 하지 못하는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초학문의 육성 발전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만큼 미래에 대한 값진 투자는 없다. 이것만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지속적 성장을 보장해줄 것이다.

윤용만 인천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