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부족한 농촌에 살수록 책을 읽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눈이 멀쩡해도 글이나 컴퓨터를 모르면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전북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농촌마을 문고인 ‘남포마을문고’를 운영하는 오윤택(吳潤澤·41)씨 .
20년 동안 장서만 1만3000권이 넘는 마을문고를 키워온 오씨는 30㎝ 앞을 구분하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 어린 시절 각막포도염에 걸려 시력을 잃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도시의 노동판을 전전하다 20여년 전 허리를 다쳐 고향에 돌아온 뒤 ‘가진 것보다 주는 것이 많은 삶’을 살아오고 있다.
84년 마을 뒷산에 텐트를 치고 마을 청소년 공부방 겸 문고를 시작한 오씨는 갖은 노력 끝에 장서 규모나 이용률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마을문고로 키워냈다.
오씨는 또 농한기에 극성을 부리던 도박을 마을에서 완전히 몰아냈고 마을에 들어오려던 대형 양계장을 주민들과 함께 막아냈다. 경지정리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주민감시단’을 운영하는 등 스스로 권익 찾기에도 앞장서 왔다.
이 밖에도 4-H 활동과 김제지역에 지체장애자연합회, 청년연합회, 마을장학회 등을 조직하는 등 장애를 딛고 봉사를 계속해 장애극복상, 독서문화상, 청년대상 등을 받았다.
오씨가 최근 가장 몰두하는 일은 마을 주민의 정보화. 지난해 체신청과 김제시에서 컴퓨터 16대를 기증받은 오씨는 농사일이 뜸한 요즘 60대 할머니를 포함한 마을 주민 50여명에게 매일 컴퓨터 사용법과 인터넷 활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배우지 못한 농민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농촌에 사는 어린 학생들이 정보화에 뒤지지 않도록 우리 마을이 정보화 시범마을로 지정되는 게 꿈입니다.”
손마디가 굵은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주민 나종소(羅鍾素·61)씨는 결혼도 미룬 채 마을일에만 매달리는 오씨를 “자기 몸을 불살라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제〓김광오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