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과 심리철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 등 최신 자연과학의 성과를 철학연구에 반영하고 있는 미국 터프츠대 대니얼 C 네닛 교수(60)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자연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삶과 의식에 가져 올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이유선 고려대 연구교수가 맡았다.》
☞新질서 新문명 연재기사 보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은 영원한 철학적 질문에 속합니다. 교수님의 철학적인 작업은 이런 질문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두뇌에 관한 연구와 같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두뇌, 진화, 역사에 관한 사실들 자체가 인간 본성에 관해 모든 것을 대답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들은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중 생물학을 무시한 물음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유일한 종이며,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 덕분에 미래의 우리 자신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인간과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게임에서 이기려고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향적 시스템입니다.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의도하고 믿는다는 특징 때문에 동물이나 기계와 구별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교수님의 설명방식은 그런 구별을 없애자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동물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과 포탄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인간과 포탄은 같은 비율의 가속도로 낙하합니다. 인간과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더 공통점이 많습니다. 양자 모두 지향적 시스템의 원리에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에 관한 어떤 진리들은 ‘매우 평면적’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은 매우 심오하고 복잡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가진 ‘근원적’ 지향성은 우리가 체스를 두는 컴퓨터와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또한 컴퓨터가 가지고 있지 못한 여러 층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층위의 공통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무나 벌레와 생물학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나무나 벌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물고기, 토끼, 침팬지 등과 공유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 종에만 고유한 심리학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 중의 어떤 것은 우리의 문화, 언어, 직업 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철학자로 유명한 김재권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인간에게 물리적인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의식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생리학이나 생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런 과학적 관점에서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의식적 영역이 존재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생리학적 용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의식적 경험의 속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용어를 정의하기에 따라서 생리학적 속성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어떤 요소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속성이 존재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저는 1998년 버지니아 대학의 초청강연에서 교수님께서 유전자 안에 모든 것이 결정돼 있다는 결정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교수님은 또한 모든 인간의 마음이 “자연 선택의 결과일 뿐 아니라 수많은 속성들이 문화적으로 다시 디자인된 결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적 연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뜻인지요?
“인간의 문화는 인간 행위의 산물인 인공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비버의 댐이나 거미의 거미집은 그 동물들의 행위의 산물입니다. 문화는 물론 자연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을 포함해서, 자연과학에 의해 연구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적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 사회과학을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문화의 디자인된 특징들은 유전자 복제나 변이(變移)와는 별개로 복제되고 변이되기 때문에, 인간의 문화는 진화의 새로운 매개물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전적 진화의 많은 특색들이 문화적인 진화 속에서 일어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객관적인 본질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반면, 문학가들은 자아란 그렇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알기에 교수님은 인간의 객관적인 본질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계신데, 자연과학과 자아창조라는 개념은 어떤 식으로 양립이 가능할까요?
“저는 인간이나 자연 속에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아-창조의 과정은 그 자체가 전혀 신비스러울 것이 없는 자연적인 것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의 신체가 출산하고 성장하며 병이 걸렸을 때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과정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미국의 언어철학자인 로버트 브랜덤은 교수님의 지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만 지향적일 수 있다, 즉 지향성이란 공동체를 전제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향성이란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의 차원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규범을 공유하고 규범을 강제하는 행위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mind)’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사회적인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은 공동체의 상호 의사소통과 반성적인 비판을 분석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가진 기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합시다. 이것은 그 기계가 인간의 사회나 아니면 자기 자신들의 사회에서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이버네틱스와 유전공학의 발달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상황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위기라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까요?
“우리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힘을 키우기도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힘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옷이나 다른 고안물들이 없으면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능력에 있어서 위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고, 또 앞으로 모든 가능성들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가능성들이 모두 좋은 것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원한 본질을 간직하게 해 주는 그런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대니얼 C 데닛은…▼
대니얼 C 데닛(Daniel C Dennett) 교수는 1942년 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1963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영국의 옥스퍼드대로 건너가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의 지도로 1965년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5∼71년 UC 어바인(Irvine)대 교수를 지냈고, 그 후 터프츠(Tufts)대로 옮겨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그는 현재 터프츠대에서 전공에 제한받지 않고 연구 및 강의를 할 수 있는 유니버시티 프로페서이며, 1985년부터는 터프츠대의 인지연구소 소장직도 맡고 있다.
오늘날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영역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닛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저명한 철학자다.
그는 반형이상학적, 반본질주의적, 반결정론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의식에 대해 탈신비화된 설명을 시도한다. 이런 작업에서 그는 생물학, 두뇌생리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등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자유자재로 동원하는 해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제리 포더(Jerry Fodor), 존 서얼(John Searle) 등과의 논쟁은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데닛 교수는 지향성에 대한 행동주의적 설명을 통해 현대 심리철학에서 물질 이외에 마음의 영역을 별도로 설정하는 데 반대하는 반(反)이원론 진영의 대표자로 위치를 굳히고 있다.
그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다윈주의자이자 자연과학적 성과물을 논거로 삼는 자연주의자이면서도, 인간의 유전자 속에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정보가 들어 있다고 보는 결정론적인 입장을 부정한다. 그는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창조적인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데닛의 주저로는 ‘지향적 태세(The Intentional Stance)’(1987), ‘설명된 의식(Consciousness Explained)’(1991),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 Idea)’(1995), ‘마음의 종류(Kinds of Minds)’(1996·국내에서는 ‘마음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음), 그리고 1979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의 공저 ‘이런 이게 바로 나야!(Mind’s I)’(1981) 등이 있다. 이유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