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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만화세상]이유정, SF에 에로 결합 나만의 세계창조

입력 | 2002-03-03 17:33:00


일본의 여러 문화 산업 중 가장 경쟁력있는 분야 중 하나가 성인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다. 일본에서는 ‘18세 이하 금지’를 줄여 흔히 ‘18금’이라고 이야기하는데, 18금 텍스트는 다양한 상상력의 산실이기도하다.

이유정은 1994년 데뷔한 이후 꾸준히 성인만화를 발표한 작가다. 그의성인만화는 상투적인 에로영화적 묘사를 넘어 다양한 권력의 관계와 도발적인 교복 미소녀로 에로틱한 상상력을 확대해 간다.

또한 이유정은 장르의 다양성이 무시되는 척박한 한국만화의 토양에서 꾸준히 SF를 창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애인을 러브머신으로 되살리고 자신은 클리너가 된 사내의 슬픈 이야기를 그린 ‘러브머신’과 같은 단편은 물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다양한 상징으로 그려낸 ‘아시안’, 교복 소녀들의 하얀색 팬티, 그리고 일상의 폭력에 대한 다양한 메타포가 등장하는 ‘가물치전’과 ‘MOON’은 모두 빼어난 SF였다.

이유정은 SF가 다른 장르에 비해 매력이 큰 장르라고 말했다. 다른 장르에 비해 현실비판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SF는 “현실을 기반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고, 미래의 묘사는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느끼는 SF는 현실적인 만화보다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며 작가는 이러한 매력 때문에 SF 장르를 고집한다고 했다.

한때 SF가 우리나라의 주류 장르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SF는 학원물과 판타지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비주류 장르다.

이유정은 그런 비주류 장르에 18금의 상상력을 버무렸다. 작가 스스로 “마이너적 성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정의 취향은 어느 작가보다 성실하며 확실한 개성을 지닌 작가를 늘 변방에 머무르게 했다.

이유정은 2002년에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이 부드럽고 스토리 라인도 정적인 작품에서 강렬한 느낌의 극화적인 그림체를 시도해 보겠다고 밝혔다. 현재 격주간지 ‘기가스’에 ‘변태가 되자’와 웹진 코믹스투데이에 ‘MOON’을 연재하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았던 이유정의 데뷔 연재작 ‘와일드 스트레스’와 독특한 섹슈얼리티가 매력적인 ‘요동의 뱀파이어’, 욕망에 대한 끈질긴 탐구를 그린 ‘열정의 투페이스’는 물론 1996년 일본 후타바사의 만화왕상을 수상한 ‘헤어’와 각종 단편을 묶은 단편집이 한꺼번에 시공사에서 출판되었다. 2002년에는 솔직한 그의 취향을 즐겨보자.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