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부터 도입된 고교 평준화정책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생의 능력차를 무시한 획일화된 교육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당장 폐지하고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평준화를 해제할 경우 고교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증가, 계층간 위화감 심화 등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고교 평준화를 둘러싼 논란과 해결 방안 등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싣는다.》
“누구나 똑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획일적인 평등주의가 교육을 망치고 있다. 수재부터 둔재까지 한 교실에 모아 놓고 가르치라니 누구 수준에 맞춰야 하나. 상위권에 맞추면 나머지는 넋빠진 표정이고 중간 이하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면 우수생들은 교사를 거들떠도 안본다.”(서울 K고 김모 교사)
“시장논리를 앞세워 오로지 경쟁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교육에까지 적용된다면 약육강식 의식이 팽배해 결국 공교육을 황폐화시킬 뿐이다.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위화감을 조장하고 결국 사회통합에도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과열 입시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정책을 둘어싼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교육당국과 학자, 사학간의 논쟁 차원이었지만 최근 진념(陳稔) 경제부총리가 “지금보다 일제강점기 교육이 더 나았다”며 교육부의 교육정책을 잇달아 비판하면서 부처간 대립 양상으로 발전했다.
정부내의 불협화음을 우려한 청와대가 나서 “재경부는 교육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려 고교평준화 논란은 일단 잠복한 것 같지만 시각차는 아직도 팽팽하다.
평준화 논란은 단순히 어떤 교육방식이 효과적이냐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
우선 경제부처는 교육문제를 국가적 인력양성의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인성교육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그동안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학교 교육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교육정책을 정부가 틀어쥘 게 아니라 학교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교육부 무용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돈을 쓰려는 돈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유학열풍도 잠재울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교육부는 “그동안 재경부 등이 교육분야의 투자에는 소극적이면서 경쟁과 자율만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만큼 교육투자부터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 1969개 고교 중 47.2%인 930개 고교가 사립이고, 고교생 191만여명 중 54.1%인 103만여명이 사립고에 다닐 정도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중 90% 이상의 학교가 재정 자립이 안돼 정부에서 사학 재정결함 보조금 명목으로 올해는 2조8300억원을 지원할 정도로 국고 의존율이 높다.
경제부처는 사학의 등록금 책정 등을 자율화하는 대신 이 돈을 공립학교 지원에 돌리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결국 학부모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봉근(鄭奉根) 한국교원대 교수는 “경제부처가 평준화를 풀라는 요구만 하지 말고 공립고 육성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사립학교 보조금을 공립학교로 돌리더라도 소수의 명문학교를 제외하고는 불만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비평준화지역이던 수도권 신도시 6개 지역이 올해부터 평준화지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 평준화를 찬성했다.
그러나 윤정일(尹正一·교육학) 서울대 교수는 “사학을 준공립화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사립고는 원칙적으로 평준화에서 제외하되 희망학교는 평준화적용을 받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면 사회적 위화감 운운하지만 이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평준화 하에서 민족사관고가 나올 수 있겠느냐”면서 “지금까지는 사학의 공공성만 강조한 나머지 정부가 교육개혁 구호로 ‘수요자 중심교육’ ‘수월성 교육’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과열 입시를 해소하기 위해 평준화가 시작됐지만 사교육비 논란은 여전하다.
이주호(李周浩)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부교수는 “평준화로 학교 교육과 학생의 수준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사교육비 의존율이 높아졌다”며 “과외금지 시절에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았던 만큼 ‘사교육비 근절’을 명분으로 어떤 교육정책을 펴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고교별 입시가 시작되면 중학교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는 악몽이 재현된다”며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의 불만은 상존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교육부도 평준화정책의 문제점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제도 자체의 폐지보다는 현행 틀을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부터 등록금 책정과 교육과정 편성 등에서 자율권을 갖는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고 내년부터는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또 등록금 책정권은 없지만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자율학교도 30여개로 확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자립형 사립고에 대해서도 전교조 등 시민단체들은 “빈부간 격차를 심화시켜 공교육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경희(李京嬉) 전교조 대변인은 “지적 능력만 강조하는 풍토에서 인격형성과 대인관계를 통한 전인적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며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평준화 폐지보다 현행 평준화를 보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교 평준화를 둘러싼 쟁점
쟁 점
폐지론
유지론
기본 이념
획일적 평등주의 곤란
교육기회 형평성 보장돼야
과열 과외 문제
평준화로 교육의 질 떨어져 오히려 사교육 의존 가중
중학교부터 고입 과외 기승 부려 학부모 부담 가중
학력저하 교육 경쟁력 약화
수재 둔재 뒤섞여 수준별 수업 안돼 학력 하향평준화
수준별 이동 수업, 특기 적성교육 강화 등으로 극복
학교선택권·사학자율권
사립 자율권 없어 준공립화, 사학 규제 풀어 공립에 집중 지원해야
명문학교 입학경쟁 치열해져 사회적 위화감 조성, 자립형 사립고로 보완 가능
학교간 지역간 격차
고교간 학력차 무시, 우수학교 상대적 불이익
학교서열화 등 부작용 발생, 비교 기준 설정 곤란
강남지역 집값 상승
타지역에 비해 교육여건 우수, 부유층 학생 몰려
집값 상승은 경제 정책 실패탓, 교육에 책임전가 곤란
현행 학교제도별 자율권 비교
구 분
학생선발
교장 교사 인사
교육과정교과서
수업료책정
학교설립
평준화고
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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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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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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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형 사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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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